2016년 세모에 생사(生死)에 대해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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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한해가 마무리되는 계절이다. 생사에 대해 알아보자. ‘생(生)’은 새싹이 돋아나는 모양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사(死)’는 앙상한 뼈(?) 앞에 사람(人)이 꿇어앉아 애도를 표하는 모양이다. 글자에 앙상한 뼈, 부서진 뼈란 뜻의 ‘알(?)’이 들어가면 죽음과 관련된 의미를 갖는다. ‘따라 죽을’ 순(殉), ‘재앙’ 앙(殃), ‘쇠잔할’ 잔(殘) 등이 그렇다.

옛날엔 신분에 따라 사람의 죽음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불렀다. 임금이 죽으면 붕(崩)이요, 제후가 죽으면 훙(薨), 대부는 졸(卒), 선비는 녹(祿)을 타지 않고 죽는다는 뜻에서 불록(不祿), 서민은 사(死)라고 했다.

그리고 사(死)와 망(亡)을 구별했다. 죽었지만 아직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사(死)라고 하며, 이때는 죽은 이를 사자(死者)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 장례까지 다 마친 뒤에는 망(亡)이라고 불렀다. 이때는 죽은 이를 망자(亡者)라고 부른다.

또한 장사를 지낸다는 뜻의 ‘장(葬)’은 죽은 이의 위아래를 풀로 덮은 형상이다.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들이나 숲에 갖다 놓던 장례 습속이 반영돼 있다. 이 경우 시신(屍身)이 야생 동물에 의해 훼손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망자와 가까운 이들이 화살을 갖고 며칠씩 시신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조문(弔問)한다는 뜻의 글자인 ‘조(弔)’가 활(弓)과 사람(人)으로 구성돼 있는 것은 이런 풍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엔 조문할 ‘조(吊)’자가 널리 쓰인다. 이는 ‘조(弔)’의 속자다. 조(吊)는 곡(哭)을 하는 입(口)에 조문의 등(燈)을 매다는 헝겊(巾)이 더해져 만들어진 글자다. 시신을 들이나 야산에 버린 뒤 활을 들고 지켜주던 습속이 사라지고, 대신 곡을 하며 등을 달아 장례를 치르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조(弔)보다는 조(吊)가 많이 쓰이게 됐다고 한다.

생사라는 말은 범어(梵語) ‘samsara’의 번역이다. 윤회(輪廻)라고도 번역한다. 업인(業因)에 의해서 육도(六道)의 미계(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여 윤회하는 것으로 열반(涅槃)의 반대를 말한다. 생사가 끝없이 계속되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생사의 바다(生死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고해를 넘어 열반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건너기 어려운 바다(난도해 難度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어려운 말 중에 우리가 이해 할 수 있는 두 가지 생사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분단생사(分段生死).

유루(有漏)의 선악 업을 인(因)으로 삼고, 번뇌장을 연(緣)으로 삼아 삼계(三界)안의 추한 과보를 받을 때의 생사다. 그 과보는 수명의 장단이나 육체의 대소 등 일정한 제한을 지니기 때문에 분단신이라 한다. 분단신을 받아서 윤회하는 것을 분단생사라 한다.

둘째, 변이생사(變易生死).

아라한(阿羅漢). 벽지불(僻地佛). 대력보살(大力菩薩)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다. 그러나 무루(無漏)의 유분별(有分別) 업(業)을 인으로 삼고, 소지장을 연으로 삼아 삼계 밖의 수승한 과보의 몸 즉, 뜻대로 몸을 받는다. 이런 몸을 지닌 채 삼계안에 와서 보살의 행을 닦아 불과(佛果)에 이른다. 그 몸은 비원(悲願)의 힘에 의해 수명이나 육체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변이신이라 하고, 변이 신을 받는 것을 변이생사라 한다.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 같다. 또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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