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공황장애①]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엔 ‘공항장애’···고의 또는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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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국회에서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국조특위 2차 청문회가 지난 7일 열렸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비선실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최순실(崔順實, 1956年 生)은 이경재 변호사를 통해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에 “현재 영어의 몸으로 공항장애(공황장애를 잘못 쓴 표현)가 있고 건강 또한 좋지 않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그러나 국회 청문회에서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은 최순실의 불출석 사유서를 믿기 힘든 이유 3가지를 제시했다. 즉, “본인(최순실)이 직접 필사한 불출석 사유 설명서를 보면 글씨가 정서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쓴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또박또박 쓰여 있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벌써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순실씨는)공황장애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며 “불출석 사유서에 ‘공항 장애’라고 적었다”고 지적했다.

공황장애(恐慌障碍)가 예전에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겨지지 않았으나, 개그맨 이경규·김구라·정형돈, 가수 김장훈 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앓은 적이 있다고 밝혀 ‘연예인 병’으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황장애가 어떤 질병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공황장애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극심한 불안감은 공황발작이라고 볼 수 있으며, 공황발작은 성인의 약 23%가 경험한다는 연구가 있다. 공황발작을 공황장애로 잘못 진단해 필요 없이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공황장애 진단을 악용하여 군복무 면제를 받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6만4685명이던 공황장애 환자 수가 2015년에는 11만1109명으로 4년 새 2배 가량 증가했다.

‘공황’은 공포와 유사한 의미를 갖으며, 영어로는 ‘panic’이라고 한다. 공황(panic)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다. 그리스 신화의 판(Pan)은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목신(牧神)이며, 성격이 포악하여 대낮에 낮잠을 자는데 방해를 받으면 크게 노하여 인간과 가축에게 공포를 불어넣었다고 하여 ‘panic’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하지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인 공황발작이 주요한 특징이다. 공황발작(panic attack)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는 등의 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말한다. 또한 공황장애는 공공장소에 혼자 놓여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광장 공포증(agora phobia)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학에서 공황장애가 심장, 신경계 질환과 분리되기까지 약 150년이 걸렸다. 공황장애 환자에 대하여 최초로 기록한 의사는 영국의 심장내과 전문의 호프(J. A. Hope) 박사이며, 그가 1832년 저술한 심장학(心臟學) 교과서에 신경성 심계항진(心悸亢進)을 보인 환자에 관한 묘사가 실려 있다.

미국의 군의관 다코스타(Jacob Dacosta)는 1871년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1861-1865) 참전군인 중에서 갑자기 가슴이 뛰고 심장 부위의 통증,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는 병사들을 발견했다. 이들은 실제로 심장질환이 없으나 전투 중의 부상이나 심한 신체적 질병 등이 증상의 원인일 것으로 생각하여 예민한 심장(irritable heart)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알려져서 다코스타 증후군 혹은 군인의 심장(soldier’s heart)이라고 불려 왔다.

그 후 1940년경 이러한 증상들이 불안 반응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져 내과 의사가 아닌 정신과 의사가 진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알려지게 되어 정신과 질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이후 공황장애는 일반적인 불안 증상과 같이 취급되어오다가 크레인(Donald Klein)박사에 의해 만성적인 불안과 구분하여 치료했다.

크레인은 항(抗)우울제로 사용되는 이미프라민으로 임상실험을 실시하던 중에 환자의 공황발작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공황증상이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과적 증상과 상관없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만성적인 불안과는 전혀 다른 급격한 불안을 특징으로 하는 공황발작이 새로운 종류의 질환으로 구분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공황이란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에서 오는 갑작스러운 공포감을 말하므로 누구나 실제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면 누구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는 우리 몸의 반응이다. 하지만 ‘공황발작’은 특별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체의 경보 체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와 같은 방응을 일으키는 병적인 증상이다.

실제 위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이다. 만약 극한 상황에서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크게 다칠 수 있다. 이에 불안의 일차적 목적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이 아닌 평상시에 불안을 시도 때도 없이 느끼게 되면 일상생활이 어렵게 된다.

일반 성인이 경험하는 공황발작은 대개 한 번에 그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므로 공황장애로 진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황발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특별한 스트레스나 신체적인 원인에 의하지 않는다면 공황장애로 진단한다. 한국인의 공황장애 유병률은 1-2%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개 공황발작은 10분 이내에 급격한 불안과 동반되는 신체증상이 정점에 이르며, 20-30분 정도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증상의 빈도는 1년에 몇 차례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한 경우에는 하루에 몇 번씩 공황발작을 경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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