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박승주 장관후보 임명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 것 또 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 의하면 승정원은 왕명을 출납하는 정3품 아문이며,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좌부승지, 우부승지, 동부승지 각 1원이 있다. 내부적으로 사무관장이 어떻게 분화되었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의 기술이 없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은 도승지이며 수석비서관은 좌승지, 우승지 등이다. 승정원은 도승지 영도 하에 집단으로 움직였다. 왕이 각개로 부리지 않았다. 민정수석은 동부승지라 하자. 민정수석이 대통령의 친인척을 관장하며 경찰·검찰 등의 권력기관을 구처(區處)한다는 것은 동부승지가 사헌부, 사간원, 형조, 의금부를 관할한다는 것과 같다. 어느 문서에도, 소설에도 이런 일은 나와 있지 않다.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경국대전>은 세조 때 완성되었다. 조선 건국의 골격을 세운 정도전은 신권정치를 주창했다. 적장자로 세습되는 국왕이 항상 최고가 태어날 수는 없다. 청은 황제가 황자가운데서 후사를 선택하여 봉서에 넣었다가 죽은 후에 개봉하는 방식을 썼다. 실력으로 판가름 내는 유목민의 방식이다. 세자는 부단히 공부하여 훌륭한 국왕이 되기를 힘써야 하나, 역시 항상 최선일 수 없으니 신하 가운데 엄격한 전형을 거친 재상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과거는 최고의 인재를 뽑는 과정이었다. 3년에 한 번 있는 식년시(式年試)에서 33명을 뽑았다. 정말 좁은 문이었다. 이들이 벼슬길에 올라 수십년을 거쳐 재상이 될 수 있는 자는 극히 제한되었다. 의정부(議政府)에서 협의하여 왕에 올리면 왕은 육조(六曹)에 집행을 맡긴다. 태종은 왕이 육조를 직접 상대하는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취했으나 조선에서 기본은 의정부 서사제(署事制)였다. 대통령이 시시콜콜 지시하면 장관은 그대로 받아쓰는 방식은 과거의 육조직계제 만큼도 되지 않는다.

조선 하대에 탕평책을 펴고 국세의 회복을 꾀한 영조, 그의 어머니는 무수리였다. 영조에게는 이것이 평생의 콤플렉스였다. 영조에게서 사도세자가 나오고 사도세자에게서 세종대왕 이래의 성군이라고 할 수 있는 정조가 나왔다. 자식은 아버지도 중요하지만 어머니가 더 중요하다(유전자의 90%는 어머니에게서 받는다는 것이 생물학의 발견이다). 때문에 왕실은 왕비를 고르는데 각별히 신경을 썼다. 우리 조상들은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 나는” 것은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순실이 다섯 번 이혼하고 목사와 승려를 겸하고 이름을 다섯 번 바꾼 최태민의 소생이라면 어느 종류의 인간일지를 알았어야 했다.

책임총리제는 총리를 잘 골라 총리에 맡긴다는 것이다. 헌법 제87조에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 있는데 한번도 이 조항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이 조항부터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총리로 지명되면 국회 동의를 받기 전에 대통령에 이것부터 다짐을 받아야 한다. 국회는 이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왕이 죽은 후 실록을 발간하는데 초록은 왕이라도 볼 수 없었다. 연산군 같은 망나니를 제외하고는 조선의 왕들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가를 알고자했고 두려워했다. 이것이 억제로 작용하였다. 오늘날 언론과 국회에서 대통령 언동을 낱낱이 알고 기록하는 것과 같다.

언론을 보고 들으며 대통령은 참으로 민심과 역사가 무서운 것을 알아야 한다. 헌법을 개정한다고 하는데 내각제니 분권형이니 하는 것보다도 우리 조상의 지혜를 반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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