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3분의2 남기고, 국민 67% 지지받는 조코위 대통령 성공비결은?
[아시아엔=김소은 ‘인도네시아 문화’ 유튜버] 인도네시아 속담에 “Tak kenal maka tak sayang”(알지 못하니 사랑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처럼 조코위(본명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리더십은 항상 국민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두발로 직접 현장을 찾아가 국민들을 섬기는 데 바탕하고 있다.
국민들이 좋아하고 신뢰하는 대통령 조코위는 “국민들이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이처럼 대다수 국민들에겐 온유하며 친근한 그도 옳고 그름 앞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고 자신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조코위 대통령이 최근 개각을 단행해 한때 자신과 같은 편이었던 메가와티 전 대통령과 선을 긋고 나섰다.
그는 개각에서 장관 13명을 교체했으나 메가와티측 인사인 리니 수마르노 국영기업장관을 유임시켰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은 그동안 리니 장관을 ‘배신자’라고 공격해왔다. 리니 장관은 메가와티 재임 기간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일했으나, 조코위 대통령 취임 뒤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허락 없이 자신의 내각에 합류했다.
특히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투쟁민주당이 아닌 다른 당들과 합종연횡을 통해 기반을 굳히고 있으며 지난 5월 원내 2당인 골카르당의 지지까지 확보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코위는 독자행보를 가시화하면서 67%까지 올랐다.
조코위 대통령은 이번 개각을 통해 연정에 참여한 각 정당 대표나 유력인사가 장관직을 나눠 갖는 관행을 뿌리 뽑고 개혁에 박차를 기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비치고 있다.
그의 단호한 정책 추진의 사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있어왔다. 조코위 정부는 작년 1월 외국인 5명을 포함한 마약사범 6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데 이어 프랑스, 호주,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외국국적 마약사범 7명에 대해 총살형을 집행했다. 당시 호주는 자국민 마약사범 2명에 대한 형집행중지를 수차례 촉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인도네시아와 체결하려던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을 미루기도 했다. 하지만 조코위 대통령은 국내의 마약 확산을 막으려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 대해서도 엄벌해야 한다며 사형집행을 강행했다.
또한 지난 4월에는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조업중이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어선 20여척을 나포해 해상에서 폭파시켰다. 이어 6월에는 중국과 인도네시아가 어업권을 놓고 분쟁중인 남중국해 나투나제도 근해에서 조업하던 중국어선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외에도 외국인 취업비자 발급규정을 까다롭고 세분화하여 자국 노동자와 경쟁하는 분야의 취업은 최대한 억제하고 자국이 필요로 하는 직종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1945년 8월 17일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에선 현재까지 총 7명의 대통령이 취임했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에 이어 30여년 동안 독재정치를 했던 수하르토, 1998년 폭동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수하르토를 대신하여 잠시 대통령직을 맡게 된 인도네시아 최초 박사학위자 하비비, 무능력과 부패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지만 인도네시아 사상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로 당선된 와히드, 인도네시아 최초 여성 대통령이자 초대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띠, 과반수 득표로 당선되어 10년간 인도네시아 정치안정을 위해 힘썼던 유도요노 그리고 현재 인도네시아 최초로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인 조코위 대통령이다.
조코위 대통령(본명 Joko Widodo)은 2014년 10월 취임해 현재까지 국가원수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수라카르타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구 판매업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살다가 2005년도 수라카르타 시장에 당선돼 정치계에 입문하였다. 수라카르타 시장 재직 동안 그는 지역기업 육성정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2010년 압도적으로 재선했다. 뒤이어 2012년에는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는 항상 남들보다 2~3배 이상의 노력으로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로 대권주자로 급부상하였다. 2013년 대선출마를 선언하여 그가 소속한 ‘민주항쟁당’ 총재인 메가와티를 대신하여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당시 그를 지지하기 위한 콘서트가 열리는 등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조코위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윽고 2014년 7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해 10월 제7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2014년 총선을 앞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코위가 압도적으로 대선에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찰나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군부대 출신의 대통령 후보자 프라보워(본명: Prabowo Subianto)의 출현으로 대선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7월9일 치러진 대선은 인도네시아 역사상 세번째 직선이자, 최초로 직선제에 의한 정권교체를 묻는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선거중립을 선언함에 따라, 1999년 이후 두번째로 여당 후보가 없는 대선이자, 직선제로는 처음으로 여당 후보가 없는 대선이 될 것이었으나, 선거를 1주 가량 앞두고 프라보워 후보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여야의 대결로 바뀌었다. 제2대 대통령 수하르토의 둘째 딸의 前남편이자 ‘위대한 인도네시아 운동당’의 프라보워는 당시 대선 토크쇼에서 조코위 후보를 비난하는 등 자신이 소유한 재력과 기득권으로 밀어붙여 대선의 판을 뒤집으려 했다.
당시 선거기간 중 조코위 후보가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후손이자 기독교 신자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유언비어는 타격이 컸다. 오랜 세월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한 필자조차도 대학교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화교가 상권을 잡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식민지시대의 재현을 막기 위해 정치권력은 ‘오리지널 인도네시아인’들이 화교들에게 절대로 내주려 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주민등록증에조차 자신의 종교를 필히 기입해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무슬림·카톨릭·불교·힌두교·유교 이렇게 5개 종교를 인정하며 종교를 매우 중시하는 국가지만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선거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에선 조코위 후보의 사망을 알리는 엉터리 부고도 나돌았다. 이에 조코위는 스스로가 독실한 무슬림임을 밝히며 유언비어에 맞섰지만 지지율 하락은 막지 못했다. 하지만 대선 투표 결과 민주항쟁당 조코위가 53.15%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결과에 대해 프라보워 후보가 불복하고 그의 지지들의 시위가 한동안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0월 취임하게 된 조코위 대통령에게 국내외의 기대는 컸다. 그가 취임한 이후 그는 ‘Mental Revolution’(의식개혁) 모토 아래 3대 핵심정책을 발표했다. 그것은 △마케팅 인도네시아 △가치중심 교육시스템 구축 △미래 지도자 양성이다. 그동안 홍보 부족으로 세계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한, 경쟁력 갖춘 인도네시아 제품과 풍부한 문화유산 홍보에 주력하고 가치중심의 교육시스템을 통해 전문적인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미래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개인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정치환경의 가변성으로 인해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특히 정치경력은 국가 차원의 정책수립, 특히 외교와 국방 분야의 경험 미숙이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여론을 존중하면서 이를 대외정책에도 적용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받고 있다. 오바마, 푸틴, 시진핑 등 국제정치를 주름잡는 국가원수들과 잇단 회담을 통해 세계무대에서의 인도네시아 입지를 한층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 이후 20여년을 보낸 기자는 그가 매 3개월마다 사회각계 지도층을 초청해 당면 핵심과제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는 모습을 보며 40개월 남짓 남은 잔여임기 동안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이끌 것이란 기대와 믿음이 갈수록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