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하면 떠오르는 끄루뿍·나시뚬쁭·빤잣삐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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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전통 음식 나시 뚬쁭(Nasi Tump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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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잣 삐낭(Panjat Pinang)”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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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루뿍(Kerupuk) 먹기대회

[아시아엔=김소은 인도네시아 문화 유튜버]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다르면서 은근히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노래와 춤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정이 많은 점 등이 그렇다. 또 독립기념일에 대한 애국심이 남다르다. 신기하게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은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는 1602~1799년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이는 16세기 중반부터 귀금속과 향신료(후추, 정향, 육두구)를 구하기 위해 동아시아 해역에 진출해 활동을 시작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설립으로 비롯된다. 네덜란드의 통치는 외형적으로는 인도네시아를 발전시켰지만 내부적으로는 경작한 작물을 헐값에 사들여 유럽에 판매함으로써 원주민의 노동력 착취 등 불만을 많이 샀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네덜란드를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에 수립한 교육시설과 시스템은 도리어 소수의 식민지 지식인이 혜택받고 다수 민중이 소외받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1908년 5월20일 부디 우또모(Budi Utomo)의 민족주의운동이 창설되기도 하였다.

이후 1940년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네덜란드 본국이 점령되자 네덜란드 왕실을 주축으로 망명정부가 영국에 수립되었다. 나머지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는 망명정부의 관리들이 계속 통치하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2년 일본제국이 석유 생산지를 확보하고자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침략하자 망명정부 관리들은 항복하고 동맹국인 호주 등으로 피신하였다. 일본제국의 점령으로 네덜란드의 동인도제도 통치는 완전히 종료되고 인도네시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다. 독립 전까지 3년 정도 되는 동안 일본제국은 네덜란드의 300여년보다 더욱 악랄하게 지배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자원을 수탈하고 일본제국에의 동화정책을 펼쳤다.

1945년초부터 일본 패망의 기운이 역력해지자 인도네시아는 독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위원장에 수카르노(인니 초대 대통령)를 임명했다. 그해 8월 14일, 일본의 패망 소식이 전해지자 수카르노와 하타(인니 초대 부통령)는 일본의 영향력 하에 있는 독립준비위원회 명의의 독립선언을 꾀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일부 청년단체 소속 젊은이들이 수카르노와 하타를 8월 16일 새벽 3시 자카르타 근교로 납치하여 자신들이 준비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라고 종용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수카르노와 하타는 16일 밤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와 다음날인 1945년 8월 17일 오전 10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8월 17일이 천신만고 끝에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Hari Kemerdekaan Republik Indonesia)로 지정된 연유다. 하지만 오랜 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네덜란드는 재점령을 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네덜란드의 전쟁도발에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미국이 인도네시아 편에 서서 중재하기 시작하면서 4년간 계속된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은 막을 내렸다. 네덜란드는 1949년이 되어서야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공식 인정한다.

인도네시아에선 독립기념일 포함돼 있는 8월초부터 아구스뚜스안 (Agustusan)이라고 하여 건물, 길거리, 골목 곳곳에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흰색을 사용하여 개선문을 만드는 등 다양한 장식을 한다. 독립기념일 당일은 인도네시아 전국이 공식휴일이며 이날 아침 공공기관에서는 애국조회 및 체육대회를 비롯해 요리·미술·시낭송·웅변·노래·춤·전통의상 등의 경연이 열린다. 체육대회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끄루뿍(Kerupuk)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밥과 곁들여 먹는 동그란 라면모양의 과자를 줄에 매달아 손을 사용하지 않고 먹는 경기가 끄룩뿍이다. ‘나시 뚬쁭’ (Nasi Tumpeng)이라는 전통음식 먹기와 ‘빤잣 삐낭’(Panjat Pinang) 경기가 인기다. 이는 높은 기둥에 매달아 놓은 각종 상품을 맨손과 맨발로 올라가 쟁취하는 시합이다.

필자는 이렇게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독립의 기쁨과 감격을 서로 공유하며 기억하려는 모습과 함께 참여함으로써 고똥로용(Gotong Royong, 상호부조) 하려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국가기념일이나 기관의 설립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디르가하유(Dirgahayu)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에는 빤장 우무르(Panjang umur) 즉 ‘장수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인도네시아 국기가 빨간색과 흰색이어서 현지인들은 인도네시아 국기를 ‘빨강·흰색 국기’ 즉 븐데라 메라 뿌띠(Bendera Merah Putih)나 상 메라 뿌띠(Sang Merah Putih)라고 한다. 빨간색은 용기와 용감함을 의미하여 사람의 육체 또는 전통 흑설탕을 나타낸다. 흰색은 신성과 경건함을 의미하여 사람의 정신,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주식인 쌀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 국가의 제목은 ‘위대한 인도네시아’ 즉 인도네시아 라야(Indonesia Raya)이며 리돌프(Wage Rydolf Soepratman)이 작곡하였다. 세계 최대의 섬나라이자 600여개 이상의 방언과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나라에서 ‘하나의 민족·국가·언어’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바하사 인도네시아(Bahasa Indonesia)를 인도네시아 공용어로 채택됐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헌법의 5대 원칙이자 건국이념인 빤짜실라(Pancasila)가 이를 더욱 견고히 해주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애국심과 정통성·자주성이 크게 고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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