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향희 셰프의 2015 독일 아누가 관람기] 유럽미식가 놀래 건 ‘김치’만이 아니었다!
[아시아엔=독일/정향희 제주 부영호텔 셰프] 세계 최대 식품 전시회 아누가(Anuga)가 지난 10월10일부터 14일까지 독일 쾰른 국제전시장에서 개최됐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이 전시회는 프랑스 파리의 씨알(Sial) 식품박람회 규모와 맞먹는 큰 전시회로, 이번 쾰른 전시장은 세계 많은 식품 바이어들과 식품업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파인푸드(fine food)를 비롯해 냉동식품, 육류, 냉장 및 신선음식, 유제품, 베이커리, 뜨거운 음료, 일반음료, 유기농식품 등의 분야에 전세계의 수많은 식품관련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이 참관했다.
이번 아누가의 10대 트렌드 테마로는 채식주의 제품(Vegan products)과 건강 및 기능성 식품(Health & functional food), 미식가 제품 및 지역 특산품(Gourmet products and regional specialities), 할랄 음식(Halal Food), 유기 제품(Organic products), 건강한 재료(Ingredients), 개인 상표(Brand names/private labels), 일반 채식 제품(Vegetarian products), 공정 무역 제품(Fair Trade products), 코셔 제품(Kosher products)이 선정되었다.
한국에서는 AT 경남, 한국식품 산업협회, 한국무역협회 대전충남지역본부에서 운영하는 한국관을 비롯한 60개사가 참가해 해외마케팅에 참가했다. 전시회장의 1관, 2관, 4관 등에서 한국관이 설치됐으며, 평균 100~200건 정도의 바이어 미팅이 이뤄지고 시식행사가 진행되었다.
어느 나라가 전시를 잘 하는지, 제품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분위기가 어떠한지 등을 보는 건 또 다른 재미였다. 일본은 전시관 자체가 일본의 분위기가 물씬 나도록 잘 꾸몄고, 관람객에게 부스 등 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자체 안내센터까지 갖춰놓았다.
유럽권 업체들이 주로 참가했던 육류(소시지, 햄 등)홀에서는 분위기 자체가 하나의 레스토랑을 보는 듯 했다. 의자와 식탁들을 많이 설치해 레스토랑 분위기를 냈고, 요리사가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대형 햄을 놓고 조금씩 잘라 시식행사를 하는 것도 참 재밌는 광경이었다.
열대과일이 풍부한 필리핀에서는 과일을 말려 스낵으로 만든 제품들이 돋보였으며, 스리랑카에서는 여러 종류의 신선한 차를, 베트남에서는 갖은 채소를 피클로 만든 저장식품과 곡식들을, 인도는 또 다른 다양한 곡식과 그것으로 만든 면, 쿠키 등을 선보였다.
한국관에서는 눈에 띄는 몇몇 중소기업들이 있었는데, 첫번째로 (주)다움 기업의 천연비타민을 들고 싶다. 생식으로 유명한 다움에서 천연비타민 캡슐을 선보인 것은 의외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연비타민은 원료 정제의 완성을 위해 화학첨가물(Chemical binder)인 이산화규소(Silica dioxide), 결정 셀룰로오스(Crystalline cellulose), 스테아린산 마그네슘(Magnesium Stearate) 등이 들어가 하나의 캡슐을 만든다. 그러나 다움에서는 이 캐미컬 바인더를 빼고 순수 자연비타민인 캡슐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확보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전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하니, 우리나라 기업에서 이런 제품이 나온 것이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주)하늘바이오의 ‘오희숙 전통부각’도 눈에 띄었다. 부각만으로 올해 미국에 3천만 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을 성사시킨 이 기업은 부각을 순수 식물성식품만으로 제조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눅눅해 지지 않는 자체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채식과 자연음식을 원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미역, 우엉, 김, 호박, 다시마 등 몸에 좋은 재료를 간편하게 과자처럼 먹을 수 있는 스낵을 만들었다. (주)하늘바이오 윤혜미 대표는 산패가 빠르지 않은 옥수수 씨눈유로 튀겨내는 것이 비결 중 하나라고 했다. 이 제품은 또한 유당불내증이나 알러지가 있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
(주)청해물산의 즉석 간고등어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수산업계(선어) 중 네번째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아낸 기업이다. 이 업체는 소비자가 고등어를 3분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즉석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술을 오랜 연구 끝에 개발했다. 수분의 증발이 고등어의 맛을 좌우한다는 점이 관건이었는데, 최소 70%이상 수분을 붙잡아내는 공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주)청해물산의 차병호 대표는 비린내를 최소화 하기위해 특별 제작한 로스팅 기계에 구워낸다고 말했다. 전세계 바이어들이 고등어 맛에 훌륭함을 표했고, 각국의 향신료를 첨가하여 구워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김치로 유명한 기업 한성 부스와 종가집 부스 사이, 박광희 푸드의 박광희 김치도 눈에 들어왔다. 내 첫 번째 질문은 공장의 규모였다. 대형 김치업체들과 나란히 있어 그것이 먼저 궁금하기도 했다. 답변은 깔끔했다. “우리는 작아요.”
기계의 손을 타지 않고 오직 핸드메이드만 고집하는 이 기업은 큰 공장이 필요가 없었다. 김치의 맛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산초장아찌나 당귀무침 등도 선보였는데 참 훌륭했다.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과 부재료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설탕 대신 직접 담근 매실액기스로 맛을 낸다든지 하는 그런 비결들이 있는 건가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해맑은 웃음과 함께 돌아오는 답변은 역시나 깔끔했다. “우리는 일체 그런 것 안 넣어요.”
김치의 맛은 김치다워야 하기 때문에 특별한 것을 넣으면 고유의 맛을 내는 김치가 아닌 그 조미료 맛의 김치가 된다는 이유였다. 설탕을 많이 쓰지 않고 당 조절은 어떻게 내는가 하니 단맛이 나는 양파, 파, 무 같은 김치의 고유 재료를 더 넣어 만든다고 대표 박광희씨는 전했다. 원재료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광희씨의 김치가 국내 미식가 안에서 왜 인기가 좋은 지 실감했다.
마지막으로 본 8관은 내가 출입하던 입구 쪽과 가장 멀어 애를 먹었다. 유독 인기가 많아 왜 그런가 보니 명함 한 장만 내면 맥주와 와인을 무제한으로 시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고자 했던 몇 대표들도 그 자리에 가니 볼 수 있어서 잠깐 웃음이 났다.
쾰른 메쎄의 전시장 자체가 워낙 크다보니 하루에 2~3개의 홀을 돌아보는 것도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었지만 세계의 식품 흐름들을 볼 수 있어 내게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식품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보존 가능한 기술력과 유기농과 같은 건강한 음식을 지속·발전시키는 것이 이번 세계 식품박람회에서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쾰른 박람회에서 한국의 우수한 식품들이 세계 각국 바이어들의 찬사를 받고 세계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훌륭한 기업들로 거듭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주)청해물산 차병호 대표가 전한 말이 기억이 남아 적어본다.
“대기업들은 자금력이 많아 홍보마케팅 등이 잘 이뤄지니 외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중소기업들은 이런 박람회를 참가해야 홍보할 수 있습니다. 공기업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소기업들을 위해 지원을 아낌없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