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돈PB의 공감재테크⑩] 당신의 노후대비, 상상만으론 안 된다

[아시아엔=홍승돈 스탠다드차타드은행 PB] 노후라고 하면 흔히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하곤 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65세 전후였던 시절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하면 이후의 삶이 ‘생의 마감’을 준비하는 평화로운 시간이라는 인식을 갖곤 했다. 하지만 경제활동 수명은 짧아지고 반대로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은퇴 이후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제 2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은퇴 준비라 하면 은퇴를 위해 저축 또는 연금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적 단절을 맞이하는 시점에 경제수명의 연장은 반드시 필요한 노후 준비의 하나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것이 노후 준비의 전부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돈’ 이전에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은퇴 이후의 모습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그 목표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는 것이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은퇴 후 귀농을 한 부부를 방송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들 부부는 평소 취미 삼아 화초 키우는 걸 좋아했다. 부부가 은퇴 후, 까가운 곳으로 귀농해 소득 창출이 가능한 몇가지 화초를 재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은퇴와 은퇴 이후 ‘제2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수십 년간 도시에서 숨막히게 살아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모습일지 모르겠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산 준비 외에도 귀농에 필요한 농사 지식이나 경험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어떤 노후의 삶을 계획하는지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은퇴 준비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삶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은퇴 준비가 현재의 지출을 힘겹게 줄이고 저축하는 고달픈 과정이 아니라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유쾌한 과정으로 만들자. 졸업 후 입사를 앞두고 있는 예비 졸업생들이 부푼 가슴으로 다가올 직장생활을 준비하듯, 아름답고 즐거운 은퇴를 위해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준비하자. 노후는 나머지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기 때문이다.

‘은퇴한다’는 두려움 극복이 중요
은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일반적으로 불안, 초조 혹은 두려움일 것이다. 이렇게 은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부정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준비 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는 경제활동기간 동안 추후 소득에 단절이 생기는 기간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책임’이라는 이유와 변명으로 소비활동을 해왔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면, 부모로서 그리고 자식으로서 혹은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걸맞는 ‘책임’을 이유로 소비해온 것이다. 요즘엔 방학만 되면 학원가가 썰렁해진다고 한다. 얼른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과거 방학 때마다 학원을 다니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과는 다르게 요즘엔 방학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중고생들이 많아 오히려 학원가는 비수기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특정 지역의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소비는 내 상황과 현실에 맞춰 이루어지기 보다는 책임과 체면에 맞춰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문제 삼아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얘기할 생각은 없다. 소비라는 게 꼭 필요한 곳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소비 패턴을 조금만 점검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은퇴 이후의 삶이, 혹은 은퇴하면 드는 부정적인 느낌의 상당 부분이 개선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은퇴 전 가계의 재무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은퇴 후 예상 소득과 지출을 계산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 후 예상소득과 지출을 꼼꼼히 따져야
은퇴 후 가계의 소득이 줄어든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으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국민연금,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내가 준비해 둔 연금의 수령액이 총 얼마인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올해 한 금융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인연금 가입자 650만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신의 연금 수령액이 얼마인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준비는 하고 있음에도 그저 어림짐작일 뿐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인 것이다.

노후준비와 관련된 각종 조사를 보면 사람들이 노후 준비를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조사대상의 약 80%나 되는 사람들이 노후 준비에 있어 필요자금보다 적게 준비했음에도 나름 충분히 준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은퇴 이후의 삶을 힘들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소 일년에 한번은 자신이 은퇴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 필자의 고객 중에는 자신의 생일에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은퇴를 위한 자금의 점검이라 하시는 분도 있는데 이렇게 자신만의 날짜를 정해서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 나가는 것도 좋겠다.

은퇴 전에 있는 분들(특히 젊은 나이일수록)을 대상으로 은퇴 이후 예상되는 지출 규모를 설문해 보면 은퇴 후엔 소득도 줄어들지만 그만큼 돈을 쓸 곳도 없기 때문에 상당부분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로 은퇴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질문을 던지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은퇴를 하더라도 기본적 생활을 위해 지출하는 돈은 비슷하며, 은퇴 이전의 지출 습관에 따라 형성된 지출 규모도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은퇴시기가 자녀의 독립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면 은퇴 이전이나 이후의 지출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은퇴 후엔 일반적으로 은퇴 전 지출의 70~80% 규모를 지출하게 된다. 또한 개인차는 있겠지만 생의 마감이 다가오는 시점에는 대개 의료비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 오히려 훨씬 많은 지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렇듯 단순히 ‘은퇴 이후에 매월 얼마 정도 쓰게 될 것 같다’ 보다는 은퇴 이후의 시간들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고려하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필자의 고객 중에는 암에 대한 가족력이 있는 분이 있는데 이런 경우 은퇴를 준비하는 계획 중에 암에 대한 대비를 고려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배우자간 나이 차이 등을 고려해 일률적인 준비가 아닌 다원화(多元化)된 준비를 권한다. 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의 평균보다 길다. 게다가 나이 차이까지 많을 경우 남편의 임종 후에 부인이 혼자 살아가게 될 시간은 그만큼 길어지므로 어느 일방에 맞춰진 은퇴 준비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실예로 자산이 상당한 분께서 본인을 중심으로 은퇴 준비를 한 후 자산의 대부분을 은퇴 이후 사용하였다. 그리고 임종 이후 배우자에게 남겨진 준비가 없어 결국 홀로 남겨진 배우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이렇듯 은퇴 준비 과정은 단순하지 않으며, 여러 예측 가능한 변수와 예측 불가능한 변수까지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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