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돈PB의 공감재테크 ②] 보통사람들의 비범한 돈 관리법
장기투자를 위한 종잣돈 마련하기
[아시아엔=홍승돈 스탠다드차타드 PB] 사회 초년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빨리 돈을 모아 직장을 그만 두는 게 꿈이라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논리는 이렇다. 소득 중 얼마를 투자하여 10년, 20년 후에는 건물을 사고 거기서 나오는 임대수입으로 생활한다는 것이다. 마치 50, 60대 자산가를 상담하는 듯한데 아마도 경제·사회적 조로(早老) 증상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전혀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들의 계산식으로 본다면 적어도 연 20~30%대의 수익을 꾸준히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월 100만원씩, 꾸준히 1년을 모으면 1200만원, 10년에 1.2억원, 20년에 2.4억원인 것이다. 원금만으로 보면 말이 안되는데 대체 무얼 근거로 그런 꿈을 갖는 것일까? 간단하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투자의 내재적 변동성과 시간의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투자에는 ‘종잣돈의 마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시간 관리와 계란 바구니
자산증식을 위한 투자 이전에 먼저 종잣돈이란 게 필요하다. 종잣돈이 무엇인가? ‘어떤 돈의 일부를 떼어 일정 기간 동안 모아 묵혀 둔 것으로, 더 나은 투자나 구매를 위해 밑천이 되는 돈, 말 그대로 특정 목적을 위해 조성한 ‘씨드 머니’인 것이다.
그럼 왜 종잣돈의 준비가 필요한 것일까? 이유는 종잣돈이 갖는 투자의 여력, 즉 좋은 투자처를 찾아 수익을 낼 수 있는, ‘거위가 황금알을 낳을’ 여유를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잣돈이 갖는 구체적인 역할을 짚어 보아야 하겠다.
먼저 위의 정의에서 볼 수 있는 바, 종잣돈의 ‘목적성’이다. 종잣돈은 뜬 구름 잡는 식의 목표나 계획이 아닌 이를 이용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함으로써 투자에 있어 분명한 계획성 갖게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필자의 친구가 상당히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며칠 전에 투자한 모 회사의 주식이 어제 상한가를 쳐서 내가 ***만원을 벌었어. 이렇게 한 달만 가보자구.”
그렇다. 매일 15%의 상한가를 한 달만 치면 서울 인근에 건물 하나는 올릴 수 있으리라. 필자는 그 주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고, 이내 그 친구에게 빠른 시일 내에 처분할 것을 권했으나 이후로도 며칠간의 상한가 행진을 맛본 그 친구가 내 권유를 들을 리는 만무했다. 과연 그 친구는 건물을 샀을까? 매도 기회를 놓쳐 결국 손실을 입었고 그 친구의 주식투자는 쓴 소주의 안주일 뿐이었다. 투자는 단기간에 큰 이익을 남겨 주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목적에 따라 현실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투자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종잣돈의 또 다른 역할은 장기투자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종잣돈은 순수하게 투자만을 위해서 준비된 자금이기에 특별한 상황이 발생을 할 경우, 이 종잣돈만이 그 역할을 지탱해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연일 쏟아지는 밝은 전망에 따라 너도나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로 반 토막이 난 주식시장에서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급해진 생활비 충당을 위해 원금손실에도 불구하고 당장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나 펀드를 회수하는 것이었다. 이는 투자목적의 종잣돈이 아닌 다른 목적의 자금을 시류의 흐름이나 근시안적인 관점으로 투자한 것에 그 이유가 있었다. 만일 그때의 자금이 종잣돈이었으면 금융위기를 감안하고도 지금까지 연 환산 5~6%대의 수익을 꾸준히 올리고 있으리라. 필자는 고객상담 때 투자규모보다는 먼저 투자 가능기간을 묻곤 한다. 이는 투자의 규모 못지 않게 시간의 투자가 가져오는 장기투자의 마술이 생각보다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기투자 외에 분산투자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종잣돈이다. 즉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알고 지내는 펀드 매니저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만약 고객이 100만원으로 여러 곳에 분산하여 투자해 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참 고민하니 이번에는 “그럼 100억원의 자산을 분산해 달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렇다. 금액의 크고 작음이 투자의 원칙을 깰 수는 없음에도 필자는 당시 투자금액이 갖는 오류에 빠졌던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100만원 단위의 종잣돈을 분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종잣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것이다. 하느님도 모른다는 미래 시장의 상승이나 하락을 한두번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해법을 가질 수 없다면, 여러 상품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예상위험과 기간, 기대수익률을 분산투자함으로써 훨씬 안정된 원칙의 자산운용이 가능할 것이다.
종잣돈 모으려면…
그렇다면 종잣돈은 어떻게 모아야 할까?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에게 종잣돈은 곧 비빌 언덕이 되어 주는 것이다. 물론 종잣돈을 만드는 신의 한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경제적, 심리적 여유를 갖기에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없이 지낼 것인가? 종잣돈을 모으기 위한 필자의 원칙은 이렇다.
종잣돈은 이른 시간 내에 모아야 한다. 인내의 고통이 너무 클 수도 있기에 단기간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1~2년, 길어야 3년 이내에 모으는 것을 권한다. 이렇듯 단기간에 모으기 위해서는 이른바 공적지출, 고정지출, 변동지출, 계절적 지출과 같은 ‘지출 항목별 절약의 미덕’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대 여력의 자금을 종잣돈 축적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종잣돈은 안전한 자산으로 모으는 것이 좋다. 단기간에 모아야 하는, 시간의 투자가 어려운 자금이다 보니 시장의 변동성과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조급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적어도 종잣돈 만큼은 가장 안전한 자산에 적립하는 것이 좋다. 은행의 예·적금에는 아직도 의외의 금리상품들이 있으니 발품을 팔아 이들을 활용하되, 그래도 수익을 조금 높이고자 한다면 우량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펀드에 일부를 투자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할 것이다.
또한 종잣돈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내 수준에 맞는 종잣돈의 규모와 계획을 세웠다면 본인의 분수에 맞는 계획과 실천이 필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해지기 위한 계획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잣돈 역시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모아야 한다. 예를 들어 3년 후의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처럼 “수익이 많이 나면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고, 수익이 잘 안 나면 동남아로 가지” 하는 식의 목표가 아닌, 시간과 금액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목표한 금액에 이르기 전에는 어떠한 지출 계획도 완전히 배제하여야 한다. 예상치 못했던 지출이 생길 수도 있으나 적어도 종잣돈 만큼은 이러한 모든 변수에 대해 안전해야 한다. 내 미래를 단순한 충동이나 기대치에 의한 지출로 망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쯤에서 이런 질문도 가능하겠다. “종잣돈이 꼭 필요한가?” 다시 말하지만, 자산증식 위한 투자를 하고자 한다면 꼭 필요하다.
또다른 질문이다. “자산증식을 하려면 누구나 무조건 종잣돈부터 모아야 하는 것인가?” 종잣돈 축적이 모든 사람의 우선순위는 아니다. 아무리 예금금리가 높아진다 해도 대출금리를 넘을 수는 없는데 대출상환을 미루고 종잣돈을 모은다거나, 결혼처럼 중대한 이벤트를 앞두고 이를 희생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자산증식에 앞서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른 자산관리, 즉 대(貸)와 차(借) 그리고 지출을 포함하는 판단이 필요하겠다.
필자의 고객 중 한 분은 “어떻게 많은 자산을 모을 수 있었는가?”라고 묻자 “은행 문턱이 닳도록 자주 다녔지. 그게 부자 된 방법”이라고 했다. 은행에 매일 간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리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속담처럼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있는 전문가 상담이 가능한 곳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금융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접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미래에 웃는 사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