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나의 30년 고백···”자랑거리보단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마부작침(磨斧作針)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다. 무식하게 앉아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수 있을까? 큰 서원(誓願)을 세운 사람은 모름지기 이 마부작침의 고사(古事)를 따르지 않으면 크게 이룰 수 없다.

마부작침 고사는 남송( 때 축목(祝穆)이 지은 지리서 <방여승람>(方與勝覽)과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에 나온다. 당의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 701~762)은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촉(蜀)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 도교에 심취했던 이백은 학문을 위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갔다. 공부에 싫증 난 이백이 산에서 내려와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봤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 노파의 대답을 들은 이백이 기가 막혀서 “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하고 큰 소리로 웃자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꾸짖듯 말했다. “얘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단다.”

이백은 크게 깨닫고 산으로 돌아갔다. 그후 한눈 팔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가 고금을 통하여 대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마침내 이룰 수 있다.

필자는 나이 45살에 친구 손에 이끌려 ‘일원대도’(一圓大道)에 귀의했다. 첫눈에 정법(正法)임을 알아보고 서원을 세웠다. ‘성불제중’(成佛濟衆) ‘제생의세’(濟生醫世)의 대서원이다. 그로부터 30여년 죽기 살기로 달려왔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야말로 일직 심(一直心)으로 달렸다.

첫째, 법회(法會)에 빠지지 않는 일이었다.

법회만 빠지지 않아도 부처 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첫 법문을 듣고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돌아오는 법회에 인생의 가치를 걸었다. 외국에 여행을 나가도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교당으로 달려가 법회를 보았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법회를 한 번도 빠져 본 일이 없다.

둘째, <원불교 전서> 읽기에 심혈을 다 기울였다.

흔히 <원불교 전서>를 ‘만고희유(萬古稀有)의 대법보(大法寶)’라고 한다. 만고에 드문 큰 보물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진리와 인생을 살아가는 도리, 도를 닦아가기 위한 세밀한 수행법 그리고 부처되어 법을 펴는 방법과 불공드리는 방법 등이 총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몇번 읽어보니 꼭 고등학교 도덕책 같았다. 그러나 점차 읽어보니 이 책만 열심히 읽어도 견성(見性)은 물론 성불(成佛)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로부터 1년에 10번씩, 10년간 100번을 읽기로 서원을 세웠다. 100번 돌파하고 30년 넘도록 303번을 봉독(奉讀)했다. 그런데 그만 작년에 눈에 고장이 생겨 이젠 중단했다.

셋째,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다.

좌선은 진리에 이르는 큰길이고 기도는 진리를 향한 지름길이라 했다. 입교 첫해 100일기도에 개근을 하였다. 그로부터 진리와 하나 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마침내 10년간 100일기도를 완주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기도생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넷째, 제생의세의 길을 달려가는 것이다.

1)연원(淵源)대행진이다. 일원대도 정법회상에 진리를 모르고 방황하는 중생들을 연원한다는 것 이상의 공덕이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비웃던 사람들이 필자의 불타는 정열에 감응돼 지금까지 수많은 분들이 일원대도에 귀의를 했다.

2) 조직교화, 문화교화에 뛰어들었다.

원불교에는 각종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을 통한 교화, 문화를 통한 교화에 열정을 불사른 것이다.

그 가운데 ‘원불교 청운회’(靑耘會)가 있다. 청운회는 도덕발양(道德發揚)운동을 하는 단체다. 오랜 세월 청운회를 이끌며 평양(平壤) 빵공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조직으로 키워냈다. 또하나 사회복지법인 청운보은동산을 설립했다. 1만6000명 회원이 성금을 모아 사회복지법인 청운보은동산을 설립하고 산하에 노원제1 사회복지관을 비롯하여 여러 복지기관이 목하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또 한가지 ‘원불교 문인협회’를 통해 문화의 꽃을 피워왔다. 전국조직을 만들고 해외에까지 조직을 넓혀 일원문화 전파에 불을 지폈다.

아울러 원불교 ‘모려회’(慕麗會)를 통한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모려회란 ‘고구려를 사모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해원 상생으로 통일의 길을 모색하고, 각종 북한 지원 사업 등을 펼쳐가는 것이다.

다섯째, 덕화만발 운동의 전개다.

필자 나이 70을 넘겼다. 지금까지 분에 넘치는 사은(四恩, 天地 父母 同胞 法律)의 은혜를 입은 몸이다. 그 은혜를 갚을 길은 없을까 생각해 낸 것이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에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계를 만드는 꿈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오늘의 ‘덕화만발’로 성장한 것이다.

정말 악전고투의 험한 가시밭길이었다. 필자와 인연을 맺었던 모든 단체와 동지들의 합력과 덕화만발 가족의 사랑으로 불초한 내가 여기까지 달려왔다. 지금 전세계 2만 여 이메일 회원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신문 6개, 월간지 2개, 그리고 일간지 1개 등에서 수천만 독자들에게 덕화만발의 글을 보내고 있다.

새삼 ‘마부작침’의 고사를 빌어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것은 필자의 눈이 악화돼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것에 대비해 남기는 글이다. 하고, 하고, 또 하고 될 때까지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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