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장군⑨김형진]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내가’, 해군 리더십 롤모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해군의 함장(captain)은 대령(Captain)이다. 이는 거대한 항공모함이나 날렵한 초계함이나 같다. 함장의 자리에는 대통령도 앉는 법이 없다. 함장은 해상에서 입법, 행정, 사법 3권을 갖는 군주와 같다. 이것이 영국 해군을 시원(始原)으로 하는,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된 해군 문화다.

함장의 명을 받들어 갑판, 항해, 무장, 통신 등의 각 부서를 면밀하게 지휘하는 것은 부장(副長)이다. 물론 함장이 함정의 모든 것에 최종책임을 지지만 일상적으로 함정이 돌아가는 것은 부장이 보살핀다. 함장과 부장의 관계는 겉으로는 사단장과 참모장, 대통령과 국무총리 관계와 비슷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돈독하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해 해전을 이끈 연합함대사령장관 도오고헤이하지로(東鄕平八朗)와 참모장 가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朗), 작전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의 관계를 보자. 그 둘은 명 참모장, 명 참모였지만, 책임과 영광은 오직 사령관 도오고에 돌아간다.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온 발틱 함대가 일본 근해를 지나는 것이 일본의 西인가 東인가, 대마도의 東이냐 西냐를 판단하는 판단은 도오고의 몫이었다. 사네유키가 건의한 T자 기동도 몇 분의 절체절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도오고의 몫이었다.

사령관, 함장은 이처럼 절대적인 무게를 갖는 결심에 집중하기 위해 고독해야 한다. 고독한 결심에 지장이 될 수 있는 일상적인 운행은 부장이 다 지휘한다.

김형진 제독(해사 12기)이 구축함 함장일 때 부장은 좀 해군에서 괴짜로 소문난, 말하자면 천재기가 있는 장교였다. 해군에서 결국 이 부장을 수용하지 못했지만 김형진 함장은 이 부장을 포용할 만큼 폭이 넓었다. 광주고를 나온 부장이 마산·진해 출신이 주류인 해군에서 진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김형진 함장과 부장의 관계는 함장-부장의 모범이었다고 당시의 요원들은 술회하고 있다. .

김형진은 부하에 대해서 대범하면서도 상관에 대한 건의도 분명히 하는 용기와 지혜를 가졌다. 군같이 엄격한 조직사회에서 예의를 갖추면서도 건의를 관철하는 것은 어렵다. 교과서에는 “한번 건의하라. 두번 건의 하라. 세번을 건의하여서도 수용하지 않으면 지휘관에 종용(慫慂)히 따르라”고 되어 있다.

민간 조직에서도 상관에 대척되는 건의를 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은 눈치만 살핀다. 상사의 지시를 받아쓰기만 하는 조직이 결코 성공할 리가 없다. 김형진 제독은 “명예는 상관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정신에 투철하였으므로 부하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김형진 제독은 한국함대사령관까지 올랐으나 참모총장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후배들은 이를 아쉬워한다. 마치 공군이 많은 부하, 후배의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았던 조근해 총장의 순직을 아쉬워하듯이. ‘한 배를 타는’ 해군의 특성이 악용되고, 비아냥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김형진 제독의 인품과 통솔방법은 돌이켜 볼만하다.

김형진 제독을 접하는 후배들은 “항상 신사가 되라”는 해군의 어머니 홍은혜 여사의 당부가 제대로 체현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김형진 제독은 해군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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