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이후 장군⑦이형석] ‘한국전쟁사’ 11권 완성···장군의 영광은 장교·하사관 피땀의 결정체 ‘산증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이형석은 일본 육사 54기로 졸업, 해방 후 1948년 특임 5기로 임관했다. 1951년 2군단을 만들 때 백선엽 군단장 참모장이었다. 이형석은 백선엽보다 연배로 보나 군 경력으로 보나 상당히 선배였으나 부군단장 원용덕과 함께 충실히 보좌하였다.

이형석은 27사단장을 마지막으로 예편하여 전사편찬위원장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사 편찬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일본육사를 나온 엘리트 이형석에게 이 과제를 맡겼다. 당시 전사편찬위원회(전편위)는 국방부의 정식편제가 아니라 인원, 예산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전편위가 법적인 뒷받침을 받은 것은 노태우 정부에서 전쟁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지는 때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형석은 한국전쟁사를 편찬하기에 진력하여 각각 1천 페이지가 넘는 11권의 <한국전쟁사>를 완성해내었다. 증언도 5천명에 달했다. 전쟁기념사업회에서 나온 한국전쟁사를 비롯하여 합참, 육군본부,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출간한 6.25전쟁 관련 책자와 저술은 모두 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전편위는 조선의 실록, 현재의 국사편찬위원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공식기관에서 사료가 잘 정리되어 나와야 학자에 의한 심층 연구가 가능하다. 한국전쟁사는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공식기록으로 충분한 폭과 깊이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철저한 사학방법론(historiography)에 입각하고 있다.

이형석은 이를 위해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하여 이병도 박사에 배웠다. 정치학자 등 사회과학자는 기초연구가 잘 되어 있는 인문학-사학의 바탕에 의존하게 된다. 자전(字典)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일본의 <大漢和辭典>은 메이지시대 때 자료를 모으고, 다이쇼 때 자료를 정리하여, 쇼와시대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편찬하는 것도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역사 편찬은 여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의 노고의 결정이다. 그러나 최종책임은 위원장이 혼자서 진다. 전문분야 학자들의 논문을 모아 편집하는 것은 역사 편찬이 아니다. 이형석은 역사 편찬자의 역할과 책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여기서 이형석을 전사편찬위원장으로 발탁한 박정희 대통령의 안목이 빛을 보는 대목이다.

일본은 패전 후 방위청 전사실이 주가 되어 수십년에 걸쳐 70여권이 넘는 <대동아전쟁전사>를 발간하였다. 이 작업은 대본영의 마지막 작전과장 핫도리 다쿠시로가 주관하였다. 전사실은 일본군을 계승하여 장차에 대비하는, 말하자면 1차대전 후 폰 젝트가 참모본부를 온존시키기 위한 조직과 같았다. 미국은 미 육군 전사실이 주가 되어 역시 방대한 수십 권의 <U.S. Army in the Pacific War>를 만들고,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전 5권의 <U.S. Army in the Korean War>를 만들었다. 이형석이 주관한 한국전쟁사는 이들 강대국의 전사에 비견되며 넓이와 깊이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국전쟁사 11권을 편찬한 이형석의 노고에 대해서는 전공으로 빛난 여러 장군에 못지않게 기억하고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장군의 영광은 수많은 장교, 하사관의 노고와 희생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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