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NS 안 하는 이유···비평대신 토론으로 ‘악플러’ 물리치고 ‘선플러’ 확산되길

한 초등학생이 인터넷상의 나쁜 캐릭터를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인터넷상의 나쁜 캐릭터를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필자는 SNS와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그 파괴력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달린 악플을 보고는 기가 질려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평과 비판이 있어야 새로운 발전이 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방만은 말아야 세상이 좀 더 살 만하지 않을까 한다.

문학은 비평과 비판에서 출발한다. 비평과 비판은 필요하다. 비평은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는 것이다. 비판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난이나 비방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는 것을 말한다.

이를 알기 쉽게 풀이하면, 비평은 사물의 좋다 나쁘다를 평가한 것이고, 비판은 사물의 좋다 나쁘다를 평가해서 판단하는 것이고, 비난은 꼬투리를 잡아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비방은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비평과 비판, 비난과 비방이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가끔 남의 글이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독자는 댓글에 자신의 의견을 담는다. 그런데 그 중에는 지나친 감정을 실어 욕설과 함께 ‘비난’과 ‘힐난’(詰難)을 하는 경우가 많다. 비난과 힐난은 비평과 비판과는 차원이 다르다. 비난과 힐난은 누리꾼들에게 ‘악플’이라고 불린다.

악플은 얼굴을 마주보고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이 많다. 대개 이런 글들을 올리는 사람들을 악플러라 부른다. 그런데 그들의 낮은 수준은 차마 보아줄 수가 없을 정도다. 지나친 욕설이 다반사다.

일단 비판은 ‘근거’에 입각해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으로 상대의 행동과 잘못된 점을 꼬집는다. 반면 ‘비난’은 근거가 전혀 없이 상대의 잘못된 행동과 관계없이 인신공격을 하거나, 혹은 오히려 상대의 잘못된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꼬투리를 물고 늘어진다.

사실 비판은 상대의 행동을 꼬집어 고치게 함으로써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경우엔 인간관계상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 비판은 훌륭한 역할을 한다. 그걸 충고로 받아들이면 분명히 약이 되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기는 매우 어렵다. 수없이 읽고 쓰는 데에도 오자(誤字) 탈자(脫字)가 튀어나온다. 한자도 마찬가지다. 잘못하면 엉뚱한 한자를 올리기도 한다.

건전한 비판과 충고는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비난이다. 그 비난을 하지 않아야 할 7가지 이유가 있다.

1.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 글쓴이의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5. 글 맥을 다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6. 편견으로 시야가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7.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비판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혹 속에서 쉽게 험담과 비판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위 7가지 근거를 늘 생각하면 악플러는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에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진 젊은이들이 있었다. 모두 시인, 소설가가 될 꿈을 가지고 있었다. 문장력과 표현력이 모두 뛰어났다. 장래가 촉망되는 이 학생들은 ‘문학비평클럽’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서로의 작품을 읽고 비평했다. 모임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의 작품에 대해 낱낱이 해부하고 비판했다.

이들은 아무리 사소한 문학적 표현도 100조각으로 분해해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런 비평을 통해 상대방의 문학적 재능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의 모임은 문학비평 경연장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 대학에는 또 다른 문학클럽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문학토론클럽’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시 서로의 작품을 읽었지만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다. 이들의 비평은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긍정적이며, 서로를 격려하는 차원이었다. 비평이나 비판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학적 시도도 높이 평가받고 서로 격려를 했다.

20년이 흐른 뒤, 그 대학 교무과에서 학생들의 경력에 대해 조사했다. 그랬더니 ‘문학비평클럽’과 ‘문학토론클럽’ 회원들의 문학적 성취에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다. 비평클럽에 속했던 그 많은 문학 천재들 중 단 한 명도 이렇다 할 문학적 활동을 하지 못했다. 반면 토론클럽에 속했던 문학도들 중에서 여섯 명의 뛰어난 작가가 탄생해 독자 모두가 인정하는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이었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보다는 ‘토론’을 즐기는 것이 낫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치우침은 도(道)가 아니다. 비평을 하거나 비판을 하더라도 상대방을 죽여가면서 하는 충고는 오히려 죄가 될 수도 있다. 말 한 마디에도 죄와 복이 왕래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말과 글에 대한 비평과 비난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댓글을 달더라도 말은 후하게 하고, 글쓴이를 살리는 글을 달아야 된다.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 했다. 잘 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만 잘 쓰면 바로 그 입이 복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남의 글에 ‘선플’을 달지언정 ‘악플’을 달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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