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만 빠진 중국의 AIIB 대박, 하지만···
이제 중국이 돌아왔다. 거대한 인구(구매력)를 배경으로 서구 자본주의 제국에도 마력을 뻗치는 중국의 흡인력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주요 국가 중에서는 미국과 일본만이 제외되어 있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제패해온 안보, 경제질서가 항상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세계에는 미국의 성공을 질시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영국도 잃어버린 제국에 대한 향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천년을 두고 영국과 다투어온 나라로 앵글로 색슨의 나라인 미국에 곱지 않으며, 독일도 세계를 상대로 싸운 나라이고, 러시아도 한때 세계를 반분했던 나라이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의 근대세계로의 진입, 특히 러일전쟁 승리는 영일동맹을 빼놓고서 생각할 수 없다. 이는 청일전쟁, 북청사변에서의 일본군의 분전이 영국에 강한 인상, 즉 “일본군은 강하고 믿을만하다”는 신뢰를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동양은 중국의 천하였다. 중국의 국력은 일본의 10배였다. 어느 누구도 일본이 이처럼 선전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보여준 활약은 서양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특히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 8개국이 참전한 북청사변에서 일본군의 용맹과 책임감은 단연 으뜸이었다.
영화 <북경의 55일>은 이때를 그린 것이다. 찰튼 헤스톤이 버티고 선 의화단 폭도의 다리를 걷어차서 거꾸러뜨리는 장면은 이후 100년에 걸친 중국의 치욕을 상징하고 있다. 오늘 시진핑의 중국은 이러한 치욕이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분기하고 있다.
당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동양의 번견(番犬)’을 구하던 영국의 눈에 일본은 안성맞춤이었다. 동맹(alliance)이란 ‘공동의 적’을 놓고 함께 싸운다는 것이다, 영일동맹의 성립은 청일전쟁 후 러시아 등의 3국 간섭에 의해 요동반도를 내어주고 10년을 절치부심한 일본으로 하여금 러시아와 일전을 겨루겠다는 결의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처럼 동맹은 “더불어 싸울 수 있겠다”는 의지와 실력이 있다는 신뢰를 상대에게 확고히 심어줄 수 있을 때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성립은 우리에게 이승만이라는, 처칠, 루스벨트와 견줄 만한 절세의 전략가가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6.25전쟁에서 같이 싸운 미군들이 백선엽 장군 등 한국군을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월남이 패망한 것은 미군에게 같이 싸울만 하다는 신뢰를 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성립은 ‘아시아는 중국의 마당’이라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초강대국 미국이 아시아에 발을 붙이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다.
이제 중국이 돌아왔다. 거대한 인구(구매력)를 배경으로 서구 자본주의 제국에도 마력을 뻗치는 중국의 흡인력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주요 국가 중에서는 미국과 일본만이 제외되어 있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제패해온 안보, 경제질서가 항상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세계에는 미국의 성공을 질시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영국도 잃어버린 제국에 대한 향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는 천년을 두고 영국과 다투어온 나라로 앵글로 색슨의 나라인 미국에 곱지 않으며, 독일도 세계를 상대로 싸운 나라이고, 러시아도 한때 세계를 반분했던 나라이다.
지난 60년간 IMF와 IBRD에 있어서 미국의 자의(恣意)는 정도가 지나쳤다.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듯이 인심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무엇이든 억지는 오래 갈 수 없다. 이번 중국의 대박은 미국이 인심을 잃은 데서 얻은 반사이익이다. 중국에 대한 서구의 우월감은 생래적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국이 돈이 많다고 하여 우쭐대는 것을 서구인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냉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비, 강약, 유불리를 정확하게 가려야 한다.
중국이 중화로 돌아가 방약무인하다가는, 언제고 그 값이 반드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