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군에게 ‘건명원’ 추천하는 5가지 이유

[아시아엔=이상기 발행인] R군! 건명원 지원 잘 했는지요? 아직 서류 작성 중이라고요? 오늘이 마감이니 몇 시간 남지 않았군요. “건명원에서 1년간 공부하는 걸 적극 권한다”는 내 말에 필리핀 유학생인 R군은 선뜻 그러겠다고 했지요. 그래요, 3월부터 1년간 건명원에서 공부하는 것은 R군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니 일생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확신하기에 적극 추천한 겁니다.

왜 그런지 궁금하지요? 19~29살 나이 제한만 없다면 내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한 가지는 건명원 학생이 되는 거예요. 내가 건명원을 추천하는 이유 5가지를 들어보려 합니다.

첫째, 건명원처럼 형식과 스펙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을 선발하는 곳이 별로 없어요. 수능도, 토익도 한자검정시험도 요구하지 않고 뽑기 때문이지요. 물론 지금까지 스펙을 쌓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한텐 조금 안 된 얘기지만,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각자 자기 길이 있는데 한두 가지 길에 줄세우는 사회일반에 대한 멋진 반란이 출입구에서 벌어지는 것이지요. R군? 통쾌한 패자부활이 건명원 입학때부터 벌어진다는 건 상상만 해도 반가운 일입니다.

둘째, 건명원 커리큘럼을 보니 여기서는 ‘많은 걸 잘 할’ 수도 ,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걸 아주 잘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과 예술 그리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 교수님들이 함께 하는 보면 금세 알 수 있지요. 그런데 그분들 면면을 보니 자기 분야에 대해서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아니더군요. 통섭이라고 하죠. 이종교배가 우수한 2세를 낳는다는 건 강의실에서만 배울 뿐 실제로는 끼리끼리만 놀고 있는 현실에서 그걸 깨겠다는 발상이 너무 맘에 듭니다. R군 선조분들이 필리핀 원주민, 중국, 말레이 등의 여러 혈통이 섞여 오늘에 이르면서 훌륭한 후손들을 배출한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굳이 비유한다면.

셋째, 건명원 교수님들이 말씀하신 걸 보니 <노자> 등 중국이나 라틴어 고전 같은 몇몇 수업은 암기도 시킬 거라더군요. 수십년 지난 이야기이지만 내가 어릴 때 선생님들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정 모르겠으면 무조건 외우라”고 말씀하셨어요. 암기를 안 해가면 체벌도 가해지고 그랬지요. 그땐 참 싫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암기하는 일은 금메달리스트들이 같은 동작을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반복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걸 몸에 익힌다고 하여 ‘습’이라고 해요. 반복하여 내 몸과 머리에 꼭 배기게 하는 것이지요. 암기는 학문의 기본인데, 컴퓨터 같은 인공지능이 생기면서 마치 구시대유물처럼 됐어요. R군, 그런데 정통 혹은 전통 공부방식인 암기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건명원의 교수법은 일종의 온고지신이지요.

넷째, 고전을 중심으로 수업하는 것도 R군을 비롯한 수강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라고 봐요. 고전의 가장 큰 특징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봐요. 고전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성서나 불경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사상을 담은 저작들이 수천년 계승 발전하는 건 기본을 일깨워주고 거기에 충실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거기서 9년간 기초를 잘 닦은 사람들이 이후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가는 걸 많이 목격했지요. 영어로 초등학교를 Primary 또는 Elementary School 이라고 하고 중학교를 Middle School이라 하는 이유가 다 있지요. 그 뜻에서 말이에요. 특히 ‘미들’은 센터 즉 중심이란 뜻만 봐도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지요.

다섯째, 내가 건명원을 추천한 데는 설립자의 뜻과 참여하는 교수들이 무척 귀감이 되기 때문이지요. 오정택 설립자는 2평 공간에서 단추공장으로 모은 재산을 후학 양성에 조건없이, 흔연히 내놨다고 합니다. 옛말에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는데, 그분은 ‘정승처럼 벌어 성현처럼’ 돈을 쓸 줄 아는 분 같습니다. 그런 분의 정성과 물질로 세워진 곳이니 절로 그 마음을 따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R군! 교수님들 역시 한국의 분야별 고수들이시지요. 멀티 플레이어인데다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확신과 도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분들이시죠.

R군!

어때요, 조금 도움이 됐나요? 신청서 작성 잘 하고 14일 면접에서도 꼭 합격하기 바랍니다. 설령 안 되면 내년에 다시 지원해도 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귀국하여 제2, 제3의 건명원을 세우는 것도 괜찮겠지요? 아닙니다. 끝까지 최선 다해 꼭 입학하길 기원합니다. 내 제안이 헛되지 않게 말이죠.

2015년 2월4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추신=건명원 지원서 가운데 30년 후 대한민국과 자신의 모습을 쓰라고 한 대목이 외국인인 R군에겐 다소 생소하겠지만, 그냥 편하게 쓰기 바랍니다. 그것도 하나의 좋은 도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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