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서 시집 온 이화여대 박사의 쓴소리···”다문화학생은 한국인 아닌가요?”
주류사회 ‘동화’보다?이질적인 사회문화 배경 이해해야
[아시아엔=박아일린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위원] 한국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교육자로서 한국에서 사는 좋은 점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changes)와 변이(transformations)가 매우 빠르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다문화사회로 바뀌면서 한국은 다문화 역사를 지닌 여타 국가에 비해 좋은 제도를 많이, 그리고 빨리 마련했다.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제안, 토론, 비판의 과정을 거치며 개선되고 있다.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와 부모들의 교육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현장교사 대부분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의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그들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고정관념과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일부 교사들은 그들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학생들에 대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또 그들 학생의 요구를 고려하는 것은 선생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주류 사회로의 동화를 강조하는 교육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사들이 알았으면 한다.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동화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는 교사들은 “한국에 계시니까 한국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라든가 아니면 “아직도 한국 사람처럼 못 하나요” 라는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 아들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 아드님이 껴안기(허그)를 많이 해요. 한국에선 고개 숙여서 인사를 하는 거랍니다. 껴안기(허그)하면 안돼요.” 과연 이같은 방식이 옳은지 곰곰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필자는 학기 중에는 학생들 강의와 전문가 대상 특별 강의를 한다. 2013년 6월에는 이주 배경 청소년을 지원하는 마지막 봄학기 전문가 양성과정에 강사로 참여했다. 유일하게 외국에서 이주한 강사였고, 참여자 대부분은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 그리고 다문화 교육 전문가 지원자들이었다.
우리는 그간 사람들이 받았던 관련 강의나 다문화 가족과의 교류경험 등을 함께 나누었다. 처음에는 주로 어렵게 사는 다문화가정 이야기처럼 슬픈 사례들이 나왔다. 그러자 한 선생님이 “사실 다문화 학생들이 우리 한국인 학생들보다….” 하면서 긍정적인 사례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다문화 학생과 한국인 학생이라니, 그럼 다문화 학생이라고 불리는 우리 아들은 한국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필자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가정, 학교 올바른 교육 시작해야
한 달 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들이 귀갓길에 ‘영화 오디션 공고’라는 광고 쪽지를 가지고 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다문화 가정의 형제 중 형은 9~11세 남자 어린이여야 하고… 주인공 형의 친구로 등장하는 아이도 역시 8~11세 사이의 한국인 남자 어린이로….”라는 문구가 있었다. 특히 ‘오디션 대상 8세에서 11세 사이의 다문화 가정 남자 어린이와 한국인 남자 어린이’라고 강조했다. 적어도 ‘다문화 사람과 한국인’ 이라는 구분 속에서는 ‘순수’ 혈통의 한국인으로 이뤄진 ‘우리’ 한국인이라는 계층이 생겨나고, 다문화 가정의 사람들은 그들과 ‘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문화 가족’은 정식 법률 용어다. 따로 대체할 말도 없으니 사람들은 자연스레 ‘다문화 엄마’ ‘다문화 어린이’ ‘다문화 남편’이라 부른다. ‘한국인’이란 말 대신에 말이다. 내가 발붙이고 사는 곳에서 늘 그렇게 구분돼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런 질문과 대답을 해본다. “한국인은 그리고 다문화는 뭔가? 둘은 아예 다른 말인가? 아니다. 둘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필자도 속 시원하게 답하진 못한다. 하지만 정부는 정책을 만들 때 적어도 단어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그 말이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그 사람을 분류할 때 쓰일 때 더욱 그렇다. 이런 표현이 옳은지, 어떻게 해야 좋은지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고민해야 한다.
필자가 참여하는 서울 마포지역의 프로그램에선 참여 대상을 ‘다문화 가족’과 ‘비 다문화 가족’으로 나눈다. 왜 그렇게 표현했느냐고 담당자에게 물으니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쪽에서 시켰다고 한다. 정부기관쪽이었던 것 같다. 이 표현도 완전히 가치중립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문화 대 한국인’ 구조가 아니라 새롭게 느껴졌다.
2011년 다문화인식개선 공모전 창작동화부문 당선작 중 하나인 <까만 한국인>이라는 책이 있다. 열 살 난 아들과 같이 이 책의 삽화를 보고 아들이 물었다. “엄마, 왜 이 아이들 셋은 까만 아이를 놀리는 거예요? 이 애들은 나빠요!”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이 애들이 원래 나쁜 아이들은 아니라고 생각해. 만약 너하고 엄마, 아빠가 이 아이들에게 ‘남을 괴롭히는 일은 나쁜 일이야’ 라고 말해준다면, 그들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그만둘 거야” 라고 답했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는 까만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음…. 더러운 애들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까만 한국인>은 무섭고 자극적인 책이라고 본다. 지도해주는 어른없이 아이 혼자 읽는다면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과 학교에서 올바른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아이들을 깨우치고, 아이들이 다문화를 이해하도록 도우려면 기본적으로 학부모와 교사의 협력과 조화로운 작업이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까만 한국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색깔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곤 한다. 따라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다문화주의와 다양성에 대해 가르치면서 색깔 활용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 가령 검정색은 무조건 더럽다, 나쁘다는 인식은 사물과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