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왕조’ 들여다보는 창구이자 거울 ‘평양’

<사진=Clement Touzard>

섬뜩한 완벽함 속 부동산 개발 이권 둘러싸고 부정부패 극심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네온 불빛의 초고층 아파트. 아파트 단지 안의 경공업 공장. 텅 빈 웅대한 격자형 광장. 도시 속의 울창한 숲과 공원. 만화의 격투 장면 같은 시퍼렇고 새빨간 벽화들.

‘자본주의 도시’ 서울에서 보기 힘든 이런 이미지들은 ‘사회주의 도시’ 평양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독일 출신 건축가 필립 모이제르(Philipp Meuser)는 저서 ‘이제는 평양 건축’에서 평양을 “모든 삶이 깔끔하게 구획돼 있는 엄격한 감시 아래 놓인 실험도시이자 가장 명확하게 사회주의 건축양식을 보존한 야외박물관”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평양을 방문한 사람들은 도시경관을 보고 민주주의 체제하의 도시에 비해 섬뜩해 보일 정도의 완벽함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도시계획가는 독재자다”라는 말이 있다. 권력과 건설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의미다. 히틀러의 베를린, 무솔리니의 로마, 오스망 공작의 파리, 표트르 대제의 상페테르부르크, 챠우셰스쿠의 부카레스트 등 인류역사는 독재자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심시티(Sim City)’로 전락한 도시들로 가득하다.

평양은 김씨 독재정권과 북한체제를 들여다보는 창구이자 거울이다. 유토피아 실험의 한 장(場)으로서 평양은 사회주의 핵심이념인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건설됐다. 시장경제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북한에서 도시는 정부계획을 통해 운영된다. 평양은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전시수도(Showcase Capital)’로 진화해 왔다.

북한의 도시는 한국과 달리 동(洞)이 아닌 거리로 구성돼 있다. 평양의 주요 대로에는 회색과 파스텔 빛의 고층 아파트들이 경관을 주도하며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고층 집합주택은 방사형으로 강한 시각적 축을 드러내며 도시의 중심광장을 향해 뻗어 있다.

고층 집합주택가는 건물 뒤의 참혹한 빈곤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 거리가 만나는 주요 연결지점이나 교차로에는 대규모의 탑형 건물이나 기념동상이 배치돼 있다. 도시 곳곳에는 호전적인 선전 구호들과 포스터들이 배치돼 있다.

250만명의 평양 주민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기득권 세력이다. 이 중 약 50만명은 핵심 특권층이다. 북한당국은 평양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과 절차를 엄격히 통제한다.

한국의 산업화 시기, 성공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한 지방 젊은이들의 희로애락을 그린 영화 ‘무작정 상경'(1970), ‘또순이'(1963), ‘바람불어 좋은 날'(1980)과 같이 북한영화에서도 평양은 꿈에서나 갈 수 있는 ‘사회주의 낙원’이다. 김현경 MBC기자(통일방송연구소장)는 “한국 산업화시대의 영화가 서울을 향한 이들의 맹목적인 동경을 직접적으로 그린 반면 북한영화들은 평양을 향한 열망을 소극적이며 간접적으로 투영한다”고 말했다. 제도적으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북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평양에도 지금 ‘자본주의 산들바람’이 불고 있다.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은 BMW같은 고급 수입 자동차, 형형색색의 택시, 유럽풍 커피숍, 햄버거 가게, 수영장 등이 많이 생겼다고 말한다.

김정일이 집권 후반 집중 투자한 평양 재건축사업은 김정은 집권 이후 천지개벽을 맞고 있다. 만수대 지구의 창전거리에는 고층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대규모 수영장과 수족관, 놀이공원이 들어선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는 평양주재 각국 외교관들이 초청됐다. 레스토랑, 슈퍼마켓, 극장 등도 김정은의 지시 아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아파트 천국’ 평양

한국의 ‘아파트공화국’ 타이틀은 평양에서도 적용된다. 평양 전체 건물 중 아파트 비율은 35%로, 10%를 밑도는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 북한에서 노후된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에 비해 아파트는 선망의 주거형태다.

낙후된 주택가는 러시아 교외의 집단공업단지를 닮았다. 평양의 높이 치솟은 원통형 건물이나 대형화된 블록, 파도 모양의 아파트는 건축가 르코르뷔제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건축양식의 산물이다.

전후 평양의 도시건설은 ‘북한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김정희(1921~1975)의 총괄적 지도 아래 추진되었다. 그는 1947년부터 1953년까지 ‘모스크바건축대학(Moscow Architectural Institute)’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김일성으로부터 평양 재건의 총체적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김정희 지도 아래 북한은 1953년 휴전 직후부터 평양 시내 아파트 건설에 착수했다. 건설노동자들은 1950년대 말 “14분에 주택 1채씩 조립한다”는 ‘평양 속도’를 만들어내며 1970년대 초까지 조립식 아파트 건설에 집중했다.
평양에는 1970년대까지 5층짜리 연립아파트와 10여 층짜리 아파트가 주를 이뤘지만 1980년대부터는 20∼4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1980년대 초에는 문수거리에 1만7000세대의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고 창광거리, 버드나무거리, 안상택거리, 천리마거리, 광복거리에는 20층, 25층, 30층짜리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북한은 88서울올림픽에 맞서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무리하게 유치했다. 평양을 ‘사회주의 이상도시’이자 ‘혁명의 수도’로 단장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막대한 돈을 퍼부었는데 이는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주거권이 인민의 ‘보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는 아파트 입주경쟁이 치열하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이른바 ‘뒷구루’라 불리는 뒷돈 거래를 통해 아파트에 입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순수하게 투기를 목적으로 사고파는 행위도 부쩍 늘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최근 평양의 주택시장에 ‘거품현상’까지 일고 있다고 한다.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아시아엔’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북한의 신규 입주자 가운데 주택을 당국으로부터 받는 이들보다 구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근래 지어진 아파트들은 처음부터 팔기 위해서 지어졌고, 주택을 배분 받고도 많은 이들이 시장에 내놓는다는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계획시스템이 마비된 북한의 경제체제에서 상품거래는 위안화와 달러로 하지만 주택거래에는 오로지 달러만 쓴다. 달러만 통용되는 평양 주택시장에서 100달러는 ‘한 장’으로 불린다”고 덧붙였다.

<사진=Clement Touzard>

10년간 가격 10~15배 폭등

란코프 교수는 지난 10년간 평양의 고급 아파트 가격이 10~15배로 폭등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평양시내 주택의 1% 가량으로 추정되는 최고급 단독주택 및 신형 고층아파트는 한화 기준으로 1억~1억5000만원에 거래되고 바로 아래 등급(15% 가량)의 신형아파트는 7000만~80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나머지 50%의 일반아파트는 3000만~5000만원, 하위 30~40%의 일반주택은 1000만~1500만원에 거래된다. 란코프 교수는 “최근 10년 사이 당국이 직접 건설한 아파트는 전체의 20%를 밑돌 정도로 아파트 건설의 주체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다.

평양의 부동산시장은 한국의 개발 방식을 닮아가고 있으며, ‘선분양가’와 ‘후분양가’까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라디오프리아시아'(Radio Free Asia)는 올초 “삼성·LG 등 최고급 가전제품과 수입 가구를 갖춘 상위층을 겨냥한 아파트 인테리어 산업이 성황”이라고 전했다.

‘수직적 욕망’을 둘러싼 부정부패도 이젠 정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평양 건설기관들은 아파트를 지어 절반은 자기들이 갖고 나머지는 공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매각하며 권력을 남용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간부들에게 바치는 뇌물은 일종의 ‘면죄부’나 ‘충성의 증거’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평양 최고급 아파트의 화려한 모습 뒤의 ‘외화내빈’이다. 주성하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에서 “평양의 난방시설이 낙후돼 있어 고급 아파트에 살아도 대부분은 겨울에 내복을 몇 개씩 껴입고, 더운 물통을 안고 자기도 한다”며 “심지어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생리상의 ‘큰 것’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세식 변기는 있어도 물이 없어 종이에 ‘변’을 받았다가 밤에 슬그머니 버리는 집들이 많다”며 “몇십 층 높이에서 버리는 바람에 가로등도 없는 밤거리를 걸어가다 ‘오물벼락’을 맞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당국이 아무리 ‘밖에다 오물을 버리지 말라’고 지시하고 감시해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소용없다”고 전했다.

아파트 저층은 ‘부의 상징’…이사 붐까지

그는 “생활용수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까지도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아파트들이 많기 때문에 대개 ‘저층은 잘 사는 집’ ‘고층은 못 사는 집’으로 나뉜다”며 “고층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한국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평양에선 돈을 벌면 웃돈을 주고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신분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건설사업은 정치·경제적으로 큰 파급력을 갖는다. 김정은은 올해 초 “선군시대 새로운 건설 전성기가 펼쳐질 것”이라 선포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핵개발과 경제발전의 ‘병진 노선’을 추구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북한 정권은 ‘전시행정’의 대규모 건설사업을 통해 장성택 처형 후 흉흉해진 민심과 사회적 관심을 경제 분야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최근 마식령 스키장 건설을 추진하며 ‘마식령 속도’를 주문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최단 기일 내에 완공하려는 속도경쟁이 지난 5월13일 평양 평천구역에서 일어난 고층 아파트 붕괴참사 사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평양의 고층 아파트 건축은 자재가 부족한 가운데 전문 인력이 아닌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규식 국방정신전력원 교수는 “5월 붕괴사고 이후 고층에 사는 고위층 간부 아내들이 남편을 닥달해 저층의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자고 조르면서 이른바 ‘이사 붐’까지 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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