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귀의 법이야기]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속도·생산성·고도성장 일변도 벗어나
사회적 안전망 확충·분배에 신경쓸 때
경험풍부 기성세대가 변화 끌어야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필자가 소송 관련 회의를 할 때 자주 하는 질문이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는가? 브랜드, 엔진 및 디자인 등도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단연코 “브레이크”라고 주장하며 회의를 계속한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생각해 보라. 잘 나가다가 서지 않는 자동차. 얼마나 끔찍한가? 모든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목표에는 추호도 이의가 없다. 다만, 성장주의자들만 판을 치고 지역개발주의자만 표를 쓸어가고 있는 현실에 유감이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은 불균형적인 성장론에 힘입은 바 큰 것은 다수가 알고 있다. 불균형적인 성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규모를 키우고 계열화하는 것을 말한다. 국산물건 쓰기 운동도 했고 사우디 현장, 구로공단과 마산공단에서 밤늦게까지 애썼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이것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중공업 중심의 울산은 계속 중공업으로만 남아야 하고, 원자력은 계속 돌아야 하며, KTX는 계속 건설되어야만 하는가? 출산율 저하로 인구는 줄고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등인 나라에서 말이다. 출산율 저하를 마치 사교육비가 부족해서거나 또는 여성의 일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으로 보는 것도 마뜩찮다. 가임기에 있는 여성들이 구조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원인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아이들은 국가성장의 동력이 되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가장이 된다. 이때, 그녀들이 낳은 아이가 비정규직이거나 또는 불균형성장으로 거대해진 경제권력 앞에 처해질 약자의 운명을 누가 해소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문제가 선결되어야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나라의 미래를 뒷받침할 것 아닌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한 갑부의 자손들 입장도 녹록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모든 일자리를 외국인에 의존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모두를 위하여 사회적 안전망과 분배에도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가 처음 경제개발 할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발전한 나라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합쳤는가? 자신은 고생하더라도 후손들은 배부르게 그리고 배우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기적처럼 되찾은 힘없는 나라의 한에서 벗어나 전쟁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났다. 그럼에도 행동하는 방식을 그 때와 똑같이 해서는 그 부모들의 모진 헌신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무작정 부모의 방식만 따라서는 아니 된다. 사기에 나오는 일화. 당초 황하강의 치수를 담당한 사람은 곤(鯤)이었다. 곤은 둑을 쌓는 방법으로 평생 황하의 치수를 위하여 애를 썼다. 그러나, 황하의 범람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 아들인 우(禹)는 그 선대와 방법을 달리하였다. 우는 물길을 내어 자연스럽게 물이 빠져나가게 했다. 황하의 범람은 잦아들었고 우는 이 공로로 임금이 되었다.

구조적으로 자연스럽게 물 빠져 나가듯이 그간의 불균형적인 성장을 치유하여 자연스런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생을 밥 먹듯 한 우리 선배들에 대하여 경의를 보낸다. 이제는 속도, 생산성 그리고 고도성장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식도 취하고 인생을 관조하는, 소위 저녁을 함께 먹는 밥상이 필요한 것이다. 글도 읽어야 할 것이고 예술과 여행도 해야 하는 것이다. 불균형이 낳은 찌꺼기를 치유해야 하는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감정노동과 피로사회가 만연하게 되어 나라가 쪼그라들 판이다. 막연한 불만세력을 생기게 해서야 되겠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들이 모두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숨긴 채 돈에만 혈안이 되어 구태를 보이는 사람들로 매도되어서야 되겠는가? 아직은 집단지성과 시대경험을 가진 믿을 만한 기성세대들이 많다. 고생을 겪어 본 기성세대들이 후배들을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의 브레이크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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