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꿈이 뭐냐고요? 물론 세계 최고죠!”

국악과 힙합의 만남 ‘비빔in서울’ 공연 팝핀소녀들 꿈

비보이가 무대에서 현란한 몸동작을 보여준다. 머리를 땅에 두고 물구나무를 선 채 뱅글뱅글 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묘기를 하듯 움직이는 비보이 댄스에 넋을 놓을 무렵 사물놀이 팀이 등장한다. 신나는 장구소리와 꽹과리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모가 돌면서 리본이 만들어내는 물결 모양이 신명을 더한다.

전혀 다른 문화일 것 같은 힙합과 국악이 한 무대에 섰다. 바로 ‘비빔인서울(beVIM in Seoul)’ 공연이다. 지난해 시작한 이 공연은 벌써 세 번째를 맞았다. 이번에는 12월11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사물놀이와 판소리, 한국무용, 전통악단에 더해 비보이, 힙합, 팝핀, 비트박스, DJ가 만났다. 과연 ‘비빔’이다. 따로 만든 재료가 섞여 오묘하고 풍부한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공연도 이질적인 장르가 섞여 새로운 풍미를 낸다. 조화의 배경은 서울이다. 대한민국, 서울을 무대로 힙합과 국악은 하나다.

무대에 오른 인원은 40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다른 길이라 생각하고 걸어온 그들은 하나로 뭉쳤다. 20살부터 40살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들 중 AsiaN은 힙합의 ‘팝핀’ 장르를 보여준 두 여성을 만났다. 연습과정을 지켜보고 그들의 꿈을 들었다. 열정이 춤을 췄다.

'비빔인서울' 중 '팝핀'의 공연 모습.

초겨울 어느날 오후?4시 반, 한전아트센터 리허설룸. 큰 거울이 붙은 연습실에 두 명의 ‘팝핀’ 소녀들이 들어 왔다. 아직 실내의 공기는 싸늘했다. 몸을 풀면서 공연 준비가 시작됐다. 이내 춤실력을 보여줬다. 마이클잭슨이 문워크에서 보여줬던 것과 비슷한 동작이다. 일명 ‘브레이크댄스’가 지금은 힙합의 ‘팝핀’이라는 장르로 들어왔다. 마치 관절을 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비빔인공연’에서 팝핀을 보여주는 김태연씨.

김태연씨(21)는 “사람들이 팝핀하면 ‘관절을 꺾어서 아프지 않냐’고 하는데, 근육을 사용해서 순간적으로 수축 이완하는 거다. ‘튕긴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이인영씨(21)는 “스트리트 댄스에도 종류가 많은데 팝핀은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움직임이 크진 않지만 체력이나 근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갑내기 두 여성은 각각 중학생 때부터 나름대로 춤을 배워오다가 고교시절 한 댄스스쿨에서 만났다. 함께 연습하면서 이들은 ‘The. B’라는 그룹 이름도 지었다. ‘the best dynamic’이라는 뜻이다.

김씨는 “처음엔 춤이 좋아서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는데 팝핀이 확 끌렸다. 춤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고 했다.

둘은 이번 ‘비빔인서울’ 공연에서 팝핀 부분을 맡았다. 다른 장르들과 달리 팝핀 부분은 조명이 둘에게만 집중된다. 둘만 따로 연습실에서 맞춰봐야 하는 이유다.

팝핀은 스트리트 댄스, 즉 길거리 문화다. 길에서 소통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길거리 문화는 힙합, 비보이, 팝핀과 같은 춤 말고도 그래피티와 같은 그림도 있다. ‘비빔인서울’ 공연을 기획한 김영원 대표는 뛰어난 춤실력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대중과 융합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해보고자 이들을 불러 모았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판소리나 마당놀이도 길바닥 문화이고 힙합 문화도 길거리 문화이다. 한국적 색채를 가미해 공연으로 만들어 봤다. 이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고 그걸 문화 상품화하는 공연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빔인공연’에서 팝핀을 보여주는 이인영씨.

이씨는 “이번 공연하면서 전통무용도 따라해 보게 되고, 팝핀에서 없는 동작들을 가져와 우리 동작도 더 좋아진다. 창작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갓 스무살을 넘은 청춘들. 여느 친구들처럼 대학진학에 얽매이는 대신 이들은 좋아하는 춤을 선택했다. 하지만 세상이 녹록치는 않다.

이씨는 “5년 전만해도 우리나라 비보이가 최고였다. 하지만 남자들은 군대 가면서 중간에 관두는 경우가 많고, 환경도 열악하고, 흔해지면서 인기가 식고 그래서 힘들다. 길거리에서 하는 배틀이나 퍼포먼스 행사가 전부다. 스폰서는 없고 댄서들이 직접 다 기획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인식 부족도 아쉬운 부분이다. 김씨는 “스트리트 댄스 자체가 대중화되지 않아서 심지어 ‘스트립 댄서’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더 잘 알려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돈이 안 되니깐 마니아들만 모인다”고 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먼저 이씨의 경우 이 공연에 참여하기 전에는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춤을 가르쳐주는 일로 생활비를 벌었다. 지금은 공연이 끝난 뒤 새벽 3시에 잠들고 오전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김씨 역시 인터넷에서 블로그 관리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지금도 공연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 늦게 잠이 들어 정오쯤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해보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못해봤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기댈 곳도 없었는데 춤을 추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말없이 다니는 아이였는데 활발해졌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한 게 춤이었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춤을 출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팝핀 그룹 <The. B>. <사진=민경찬 기자>

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씨는 내년에 뉴욕에 간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다. 내년에는 뉴욕에 갈 거다. 스트리트댄스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다. 힙합의 본거지에서 배틀도 할 거다.”

김씨는 어떤 것에 몰두하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지 쉽게 질려 해서 어느 하나에 몰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춤을 추면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아하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는 것도 기적이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그런 건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길거리 문화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직은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직 혼자서 춤추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먼저 나아가 이끌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아직은 예술로 돈 번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 대학도 안 갔고 사실 앞이 보이지 않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못 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댄서로서 자부심도 있다. 스트리트 댄스의 가치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나라에서 트인 생각을 가지고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팝핀 ‘The. B’의 무대는 열정이 가득했다. 이들의 꿈을 펼쳐낼 무대는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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