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박종철, 그들을 ‘고문’한 그곳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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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된 3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실 앞에는 조화가 놓여 있었다. 대공분실에서 이제는 이름이 바뀐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지난 30일 갖다 둔 것이다. 김 고문은 1985년 이곳에서?이근안 전 경감 등으로부터??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갖은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으며 지난 12월30일?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렌즈 속 ‘악!’ 소리 들리는 듯
같은 층 509호실은 故 박종철씨가 1987년 1월14일 물고문을 받아 사망한 곳이다. 철문으로 된 취조실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작은 렌즈가 부착돼 있다. 일반 현관문과는 달리 안에서는 이 렌즈로 밖을 볼 수가 없다. 취조실?감시용 렌즈인 것이다. 손톱만한 작은 렌즈안으로 취조실을 들여다 보았다. 나무 침대와 철제 책걸상, 그리고 낮게 구획을 두어 욕조, 세면대, 변기 등이 놓여 있다. 세면대 위에 보이는 사진이 故 박종철씨다. 영정사진 양 옆의 폭 짧은 창문이 마치 촛불을 켜둔 듯 보인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은 이곳에 붙잡혀 와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묻는 공안당국에 잔혹한 고문을 당한 뒤 숨졌다. 이 사건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고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박소혜 기자 fristar@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