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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퇴계 이황과 하서 이인후의 ‘한바탕 낭만’
한 집안의 소송을 맡았다가 우연히 그들 조상의 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조선의 선비였던 조상은 과거의 1차 시험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묵으면서 2차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다. 그 선비는 엉뚱한 취미가 있었다. 공부보다는 벗들과 정담을 나누는 걸 더 즐거워했다.그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그가 지은 노랫말에 당시 장안 기생들이 곡을 붙여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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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누워서 빈둥거리기
내가 묵는 실버타운 로비 엘리베이터 옆에는 중국식 자단나무 의자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바닥은 딱딱하고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단정하게 앉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졌다. 조선의 왕이 앉는 의자도 반듯하게 앉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단정한 위엄을 나타내도록 하는 유교 사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의자들은 사람이 단정하게 앉게끔 설계되어 있다. 의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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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택시 안 모금함을 오해했었다”
15년 됐으니 오래 전 얘기다. 그래도 여전히 내게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선능역 앞에서 택시를 탔다. 희끗희끗한 기사의 뒷머리가 보였다. 앞좌석 등받이에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택시 운전사로 조직된 모임인데 양로원, 고아원, 장애자인을 찾아가 봉사하니 조그만 성금이라도 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앞 의자 사이의 작은 공간에 천원짜리 몇 장이 바닥에 깔린 아크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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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의 시선]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잖아요”
추석을 하루 앞두고 정선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펜션에 가족이 모였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다. 정선 시골장에서 사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정원에서 숯불에 구워 먹었다. 5일장에서 사온 양념한 고들빼기와 김치도 깊은 맛이 스며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열살짜리 손자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를 놀린다. “할아버지 배는 완전 농구공이야.” “맞아 그런데 손자도 배구공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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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긴급할 때 전화 받아주는 사람
판사와 법대 학장을 지낸 고교후배와 차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아주 절실한 순간, 전화를 걸면 급하게 달려와 줄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 것 같아?”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 명도 없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오랜 감옥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긴긴 세월 누군가 면회 한번 오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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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장점을 모아보니
옛날에 썼던 메모지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 초기였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대통령이 저녁은 칼국수와 반찬 하나로 하라는 지시가 내렸지. 주방에서 난리가 났어. 반찬을 하나로 하면 김치인데, 간장을 내놔야 하는 건지 아닌지를 놓고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내무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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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인생무대’에서 당신이 맡고 싶은 배역은?
60세의 현역 직장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면서 퇴직 후 앞날을 생각하는 글을 보낸 분이 있다. 그 글을 보면서 직장이란 우리가 잠시 배역을 맡은 인생의 무대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정년퇴직으로 한 배역이 끝나고 또 다른 무대가 펼쳐진다. 30년 가까이 다니던 보험회사에서 정년 퇴직을 한 대학 동기가 있다. 퇴직하고 그는 공부를 해서 법무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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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어리석은 판사, 고마운 판사
요즈음 ‘동네 변호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맡아 직접 처리한다. 사무실도 직원도 없다. 칠십 노인이 직접 모든 일을 한다. 그는 법원장이었다. 대형 로펌 대표도 했었다. 그가 ‘동네 변호사’가 된 건 노년의 겸손과 봉사의 모습이었다. 서울에 올라간 길에 그를 만났더니 대뜸 이런 하소연을 했다. “어쩌다 법정에 나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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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의 시선] “노인의 노동은 ‘행복’이고, ‘축복’이다”
내가 있는 바닷가 실버타운에는 미국에서 역이민을 온 노년 부부들이 있다. 미국에서 수십년 살던 그들은 고국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1960년대 200달러를 가지고 나가 100만불 넘게 벌어 고국으로 왔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하는 분도 있다. 옛날에 시골 살던 사람이 서울 가서 돈 벌어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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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인생에서 ‘한끗’ 차이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몇백명 모여 공부하는 산속의 기숙학원을 유튜브 화면을 통해 봤다. 집중적으로 공부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곳 같았다. 군대식으로 점호도 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젊은시절 고시원에 있을 때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하루의 공부계획량을 짜고 과학적으로 시간을 배정해서 생활했다. 그는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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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의 시선] 천사를 만났다
28년 전 여름,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장면이 갑자기 마음의 스크린에 펼쳐졌다. 적막한 산속의 무성한 나무 사이로 안개가 물같이 흐르고 있었다. 짙은 녹음으로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산책하기 위해 맹산으로 올라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숲은 덩굴과 잡목으로 가득차 한 발을 내딛기 힘들었다. 계곡을 따라가면 마을이 있겠지 생각하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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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엄상익의 시선] “혼자 놀 줄 아는 노년, 당당하고 아름다워”
혼자 노는 능력이 탁월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치과의사인 한 친구는 의원 문을 닫았다. 그는 허름한 자신의 승용차에 낡은 텐트를 넣어 가지고 전국을 유랑하면서 살고 있다. 해질 무렵 그가 있다는 고성의 해변으로 가보았다. 일흔살이 넘은 그는 텐트 앞에서 어두워지는 바다를 보면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노년에 여유가 있어 낭만을 즐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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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의 시선] 인생소설의 후반부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다큐 화면 속에서 청춘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고시원에서 우리에 갇힌 가축 같이 들어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컵밥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면서도 손에는 영어단어장이 들려 있다. 오천원으로 라면만 먹고 사흘을 버텨야 한다면서 돈에 목말라 있다. 한 여성 수험생은 20대가 가장 꽃같은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독서실에 묻혀 있어야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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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상익 칼럼] 가난에서 오는 옹졸함 혹은 자격지심?
아흔살의 노인의사는 평생 가슴에 맺혔던 얘기를 했다. 그가 수련의 시절은 보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그가 교수댁에 인사를 가려는 데 차마 빈 손으로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생각 끝에 그는 시외에 있는 과수원을 찾아가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아홉개 싸게 샀다. 그는 과수원의 구석에 있는 대나무 가지로 광주리를 엮어 사과를 넣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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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엄상익 칼럼]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
특이한 얘기를 들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노비였다고 했다. 할머니도 노비였고, 아버지는 머슴, 어머니는 하녀였다고 했다. 2023년인 지금도 그는 노비인 할아버지와 머슴인 아버지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는 왜 할아버지가 노비고 아버지가 머슴인 걸 망각하지 않고 있을까. 내가 대학교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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