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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만년설산을 넘어’ 박노해
넘어도 넘어도 끝없는 만년설산의 길 춥고 희박한 공기 속에 난 그만 지쳤는데 이곳에서 태연히 살아가는 이가 있다 인생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상에는 가장 높은 만년설산이 있듯이 누구나 자신만의 절정의 경지가 있다 절정의 경험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정의 체험 속에 자신을 소멸하기 위해 저 만년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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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아침은 짜이 한 잔’ 박노해
인도의 아침은 짜이 한 잔으로 시작한다 모닝 짜이를 마시지 않는 아침은 산 날이 아니다 오늘 하루 인생을 시작하기 전, 깊은 숨을 쉬며 심신을 가다듬는 생의 의례 아침 태양이 비추는 나무 아래 카페에, 일단 앉아라 짜이를 마셔라, 인사하라, 한 번 웃어라 그러면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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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중독자들’ 박노해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경계할 것이 있다 자기 의지로 끊을 수 없고 도움으로도 끊기 힘들고 파멸과 죽음만이 끊을 수 있는 치명적인 중독이 있다 권력은 중독이다 인기는 중독이다 자본은 중독이다 위선은 중독이다 남 탓은 중독이다 중독은 끊을 수 없다 중독이 그를 죽이거나 한 30년 침묵과 잊혀짐으로 스스로 죽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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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꼬막’ 박노해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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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오늘의 시] ‘길을 보면’ 박노해
길을 보면 눈물이 난다 누군가 처음 걸었던 길 없는 길 여러 사람이 걷고 걸어 길이 된 길 그 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앞서 걷다 쓰러져간 사람들 자신의 흰 뼈를 이정표로 세워두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간 사람들 길을 걸으면 그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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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유언장’ 박노해
매일 아침 일어나서 내가 하는 일은 이것이다 이부자리를 정돈하는 일 이것이 나의 유언장이기에 나는 단 하루를 사는 존재이고 오늘 죽을 각오로 살아가기에 매일 아침 선물 받은 하루치의 생을 오늘 남김없이 다 살라야 하기에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하고 강력한 힘인 이 사랑, 이 목숨을 오늘 다 바치고 떠나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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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겨울 사랑’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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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카슈미르의 저녁’ 박노해
분쟁의 땅 카슈미르에서 오늘도 총칼의 공기가 무겁게 감싸던 하루가 저문다 엄마는 저녁 준비를 위해 불을 지피고 어린 딸은 식탁에 차릴 그릇을 꺼낸다 창밖에는 히말라야의 눈보라가 날려도 장작불은 타오르고, 그래도 우리 함께 있으니 이 작은 집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불의 사랑으로 봄을 기다릴지니 인간은, 세계 전체가 짓누르고 죽이려 해도 속마음을 나누고 이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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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둘러 싸이라’ 박노해 “속셈 없이 구하라 그리고”
“속셈 없이 구하라 그리고 그 응답에 둘러 싸이라” 건강함을 견지하라 그리고 그 기운에 둘러 싸이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라 그리고 그 빛에 둘러 싸이라 사랑에 투신하라 그리고 그 신비에 둘러 싸이라 고귀함을 갈망하라 그리고 그 인연에 둘러 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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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 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박노해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거라지만 사랑은 함께 앞을 보며 걸어가요 서로 마주 보기만 하는 사랑은 바람이 제 마음대로 불어가듯 변덕스런 운명에 이끌리지만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랑은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영원히 푸르른 저 소나무처럼 함께하는 혼자로 빛나는 길을 걸어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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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더 깊이’ 박노해
세계의 앞이 보이지 않고 가짜와 소음이 난무할 때 더 깊이 성찰할수록 더 멀리 내다볼 것이다 더 맑고 정직할수록 더 곧게 일어설 것이다 더 높이 집중할수록 더 크게 펼쳐질 것이다 더 힘써 나누며 갈수록 더 환히 푸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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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 시]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 박노해
꽃은 단 한 번 핀다는데 꽃시절이 험해서 채 피지 못한 꽃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한 생에 두 번 꽃이 핀다네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 꽃시절 다 바치고 다시 한 번 앙상히 말라가는 온몸으로 남은 생을 다 바쳐 피워가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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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등 뒤의 그대가 있어’ 박노해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나며 젖은 눈으로 등 뒤를 바라본다 나는 나 하나만의 존재가 아니다 내 힘만으로 살아가는 생이 아니다 내 등 뒤에 그대가 있어 나는 나아갈 수 있으니 내 등 뒤를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그래도 나는 살아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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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나무의 아이’ 박노해
한 마을의 역사와 품격은 아름드리 숲이다 크나큰 고난을 뚫고 온 장엄한 세월의 나무 그 나무와 함께 사람은 깊어진다 그 나무에 기대어 아이들은 자란다 나는 나무의 아이, 나무는 나의 성전 내 등 뒤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걸어오고 나무들은 무언가 비밀스런 삶의 이야기를 바람의 속삭임으로 전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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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 시] ‘하나의 관심’ 박노해 “사랑하다 죽는 것”
자연은 어린 것에 관심 있다 사람은 젊은 것에 관심 있다 하늘은 죽어오는 것에 관심 있다 아니다 자연도 사람도 하늘도 오직 하나에만 관심 있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으로 살고 지고 사랑하다 죽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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