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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박근혜, 같은 공학도 메르켈·대처한테 ‘사드 해법’ 구하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하나의 행동이 버릇이 되고, 버릇이 성격이 되며, 성격은 운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개인의 느낌이 생각에 영향을 주고, 그 생각이 나라의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왠지 모르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것 없이 미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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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메르켈 ‘일본 과거청산’ 발언 진짜 배경은?
두 여성-메르켈과 셔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메르켈 독일 수상이 일본을 방문해서 마음먹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사 연설, 일왕의 예방, 민주당 대표와의 대화 등을 통해서 메르켈은 아베정부를 자극할만한 이슈들에 대해 노련하게 할 말을 다했다고 독일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오카다 민주당 대표가 “아픔을 준 쪽은 빨리 잊고 싶으나, 당한 쪽은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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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한일관계 ‘굴곡’의 근원을 아십니까?
유럽의 영국·프랑스·독일 vs?동남아의 베트남·캄보디아·태국 꼬인?한일관계···‘견원지간’이던 그들에서 해법 찾을 수 있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유럽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은 천년을 두고 으르렁대던 관계다. 샤를르 마뉴 대제 이래 천년 동안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이었다. 프랑스어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궁정어였다. 1차대전까지 프랑스어는 외교관의 공용어였다. 그러던 프랑스가 1870년 보불전쟁에서 패배하여 알사스 로렌을 내어주었다. 나폴레옹 이래 유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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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리퍼트 대사 “같이 갑시다”가 한미동맹에 던지는 메시지
정약용 유배지·’모란이··’ 김영랑 시인?고향?강진 출신 김기종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미국 대사는 미국 대통령을 대표하는 자리다. 근간에 미국 대사가 외국에서 피습당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지만 한국에서 그런 사건이 터지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은 치안이 안전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피습을 당한 가운데서도 리퍼트 대사가 대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인상적이다. 4대를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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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셔먼의 입, 김기종의 칼···리퍼트 대사의 의연함이 없었다면?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이 이번 소동에서 셔먼 발언을 건드리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셔먼 차관은 국무성에서 서열 3위로 undersecretary for policy이다. 미국에서는 우리의 차관을 부장관(deputy secretary)이라고 부른다. 차관보(undersecretary)는 여러 명이 있는데, 정무담당이 선임이다. 따라서 셔먼은 정확하게는, 우리의 차관보급이다. 카네기재단에서 한 연설에서 셔먼 차관보는 “한중일 모두 책임이 있으니 빨리 정리하고 북핵문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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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대한민국 국군, 이스라엘 군대서 배울 것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이스라엘 군은 젊다. 세계적으로 여단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먼저 사단보다는 작고 연대보다는 큰 여단이 있다. 6.25전쟁 초기 땅크 사단으로 승격되기 전의 105군부대(땅크 여단)은 7천명 수준의 사실상의 사단에 근접했다. 대부분의 유럽의 여단은 연대급이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서 여단장인 brigadier는 대령 위에 있지만 장관(將官)이 아니다. 장관은 major general부터다. 영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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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일본서 자유민주주의를 찾느니 쓰레기통서 장미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한국 관련 난에서 ‘우리나라(일본)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이라는 표현을 모두 삭제하고 그냥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만 표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과연 일본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를 具有한 나라인가”는 문제를 제기해보자. 민주주의는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후에 이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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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장군의 기개···이승만 정권 하 백범묘소 참배한 성남고 설립자 김석원
김석원 장군은 구한말 무관학교에 입교하였다가 한일합방 후 일본 육사로 편입되어 27기로 임관, 일본군 대좌까지 복무하였다. 해방 후 일본군 출신은 근신(勤愼)하여야 된다는 생각에서 군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가 육사 8기 특별반으로 임관, 1사단장으로 1949년 1월 개성지구를 담당하였다. 1949년 5월부터 38선 일대에서 북한의 국지도발이 시작되었다. 1사단은 송악산 전투에서 용전하였는데, 육탄 10용사가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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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국가의전서열 11명 중 호남 1명·충청 2명·수도권 0명···국민통합은 대통령 의지에 달렸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국가의전서열 11명 가운데 영남이 8명, 호남은 1명, 충청은 2명이라고 한다. 호남 1명은 야당 몫 국회부의장이고 충청은 총리를 포함한다.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공정위원회 등 소위 5대 권력기관장은 전부 영남 출신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역편중 인사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은 유감스럽다. 인사는 적재적소를 원칙으로 아는 사람 가운데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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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위헌논란 ‘김영란법’이 성공하려면···
퇴근 때 직접 운전하는 미국 파월 장군,?자식을 보좌관으로 쓰는 한국 국회의원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입법단계부터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을 알면서 통과시킨 희한한 법으로 국회선진화법과 더불어 국회의 불성실을 알리는 대표적 악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원안을 만들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원래 공무원을 대상으로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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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일본은 ‘럭비공’, 아베는 ‘위장한 푸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1936년 2월26일 일본 도쿄에서 1연대 장병 1400여명이 반란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해외에 출진하지 않았던 1사단이 만주에 출동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중, 소위들이 하사관과 병들을 충동질한 것이다. 이점에서는 김지회 중위, 지창수 상사 등이 주도한 여순반란사건과 닮았다. 그들은 주요 육군성을 점거하고, 내무상과 대장상, 교육총감을 살해하는 한편 시종장에게 중상을 입혔다.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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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셰일가스’ 암초 푸틴의 정적 넴초프 피살에 쏠린 이목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푸틴의 정적 넴초프가 살해된 데에 대해 러시아가 소란스럽다. 물론 당국은 푸틴의 개입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치정문제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직관적으로 필리핀의 아퀴노 상원의원이 마르코스에 의해 살해되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사건이 계기가 되어 푸틴이 타격을 받고 러시아가 변화될 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필리핀의 민주화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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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박근혜 대통령 ‘연습은 끝났다’···이병기·이병호 투톱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정원이 발표되었다. 한마디로 최선의 선택이다. 아쉬운 것은, “2년 전에 이렇게 구성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아무튼 더 늦기 전에, 앞으로 3년 남은 시점에서 이렇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지난 2년간은 대통령 연습을 한 동안이었다고 치자. 이병호 국정원장은 국가 정보기관의 본령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이해하고 착오 없이 이행할 분이다. 정보맨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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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조선건국 설계자 정도전을 주목하는 이유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조선 건국은 이성계와 성리학자들의 합작품이다. 이성계는 고조부 이래 함경도에 이주하며 여진족 가운데서 살아온 일개 무변이었는데 북로남왜(北虜南倭)의 혼란기에 무장으로 공을 세워 출세 기회를 잡았다. 성리학자들은 무인정권과 몽고 침략, 불교 타락으로 형해화한 고려의 지도층에 새롭게 등장한 신진 엘리트로서 길재, 이색, 정몽주 등 최고의 명사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고려사회의 근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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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의 직필] 김무성·문재인, 김종필 내각제 제언 귀 기울여야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7세기 영국의 스튜어드 왕조를 이은 것은 독일의 하노버에서 온 조지 1세였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무를 수상 로버트 월폴에게 대부분 위임하였고 이로부터 수상이 중심이 된 내각이 정치의 중추가 되었다. 때문에 월폴은 영국의 초대 수상으로 불리고 있다. 영국이 수상이 중심이 되는 내각제가 이루어진 것은 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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