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칼럼

[김중겸 칼럼] ‘디너’의 유래를 아시나요?

태양광 외에 촛불과 등잔불을 사용하게 된 중세. 물론 부유층에 한정된 상황이다. 생활에 빛이 들어오자 이들 사이에 디너(dinner)가 자리잡아갔다.

영국 왕 리처드 2세의 디너는 거창하기 그지없다. 1387년의 어느 날 디너 내역은 이렇다. 소금에 절인 거세한 수소 고기 14 파운드, 소금에 절인 거세한 사슴 고기 84파운드, 머리를 포함한 수퇘지 12파운드, 양 머리 120두, 토끼 400마리, 백조 50마리, 거세한 수탉 150마리, 비둘기 1200마리, 거위 210마리, 달걀 1만1000개, 크림 12갤런. 이상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루 한 끼 먹던 시절이었다. 디너란 백성에게는 존재치 않았다. 혼자 먹은 건지, 아니면 신하들과 같이 먹은 건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독식이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리처드 2세>에서 리처드 2세가 살해된 걸로 묘사하고 있다. 근거는 없다 한다. 기록 상으로는 1399년 전쟁에 패배한 다음 투옥돼 그렇게 먹던 이가 4개월 단식 끝에 죽었다. 1950년대 전후에야 하루 세끼 식사가 정착됐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중류와 하류 계층 대부분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도시와 시내에서 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었다. 2차대전 후 대량생산-대량소비시대가 꽃 피었다. 1950년대 전후를 통하여 하루 세끼를 먹었다. 보편적 현상이었다.

1970년대는 주부들의 반란시대였다. 집에 얽매여 있던 중산층 주부가 가사에 진력을 냈다. 디너파티에 열광했다. 전자레인지 출현은 이를 가속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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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부총재, 이실학회 창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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