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붕괴에서 산불·폭염·가뭄까지…유럽 덮친 복합 기후재난

스위스 알프스 빙하 소멸 시점, 평년보다 두 달 가까이 빨라
스페인·프랑스 산불 피해 역대 최대 수준…그리스 소방관 3명 순직
다뉴브강 1946년 이후 최저 수위…물류·식수·에너지 위기 확산
유럽 전역에서 빙하 소멸과 대형 산불, 기록적인 폭염, 가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각각의 재난이 독립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피해를 키우는 ‘복합 기후재난’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리히연방공대 빙하모니터링팀(GLAMOS)에 따르면 지난겨울 스위스 알프스에 쌓인 눈과 얼음이 모두 녹는 시점이 21세기 들어 두 번째로 빠른 수준을 기록했다. 평년보다 두 달 가까이 앞당겨진 것으로,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겨울철 적설량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서부 알프스의 론 빙하는 불과 열흘 사이 약 1m 낮아졌다. 빙하에서 녹아 나온 물의 양은 6초마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하나를 채울 수 있는 규모로 추산된다.
알프스 빙하는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전체의 약 38%가 사라졌다. 빙하 감소는 해수면 상승과 수자원 부족뿐 아니라 지질학적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최근 130년 동안 빙하 부피가 약 16% 줄었다. 빙하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지하 마그마가 축적되는 속도가 과거보다 2~3배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빙하 소멸이 화산활동을 자극하고, 화산활동이 다시 기후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스페인·프랑스 산불 피해 역대 최대
남유럽에서는 대형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유럽산불정보시스템(EFFIS)에 따르면 스페인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약 2070㎢가 불에 타 역대 최대 피해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산불 소실 면적도 약 920㎢로 최근 20년 사이 가장 컸다.
프랑스 정부는 산불과 폭염, 가뭄이 동시에 이어지면서 국가 차원의 비상대응에 들어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현 상황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국가적 위기”라고 표현했다.
그리스에서도 크레타섬과 본토 곳곳에서 산불이 이어졌다. 진화 작업에 나섰던 소방관 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주민 대피와 주택·산림 피해도 잇따랐다.
유럽연합은 27개 회원국과 주변국의 소방 인력과 항공 진화 장비를 공동으로 조정하고 있다. 산불 위험은 여름철에 그치지 않고 오는 11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폭염 중부유럽으로 확산…식수 제한
프랑스와 영국에서 시작된 폭염은 독일과 스위스 등 중부유럽으로 확산했다. 스위스 바젤은 38.8도를 기록해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했으며, 스페인 일부 지역에는 42도에 이르는 폭염이 예보됐다.
고온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식수 부족도 현실적인 위기로 떠올랐다. 영국 최대 수도업체인 템스워터는 런던과 인근 지역 주민 약 1000만명을 대상으로 물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정원 물주기와 세차 등 비필수적 물 사용을 줄여달라는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강수량 감소는 유럽의 주요 수상 운송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다뉴브강 수위는 194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르비아를 비롯한 다뉴브강 연안 국가에서는 화물선이 좌초하지 않도록 적재량을 줄여 운항하고 있다.
다뉴브강은 유럽의 대표적인 물류 통로다. 수위 저하는 곡물과 석탄, 석유제품 등의 운송비를 높이고 산업 생산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냉각수를 강과 호수에 의존하는 발전소의 가동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기후위기, 개별 재난 아닌 연결된 위기
이번 유럽의 기후재난은 빙하와 산불, 폭염, 가뭄이 서로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겨울철 적설량 감소와 조기 해빙은 여름철 수자원 부족을 심화시키고, 고온과 건조한 토양은 산불 위험을 높인다. 산불로 숲이 사라지면 토양의 수분 보유력과 탄소 흡수 능력도 떨어져 폭염과 가뭄이 다시 심해질 수 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 사건들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기후 비상사태가 서로를 더욱 맹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상황은 기후재난 대응이 산불 진화나 물 사용 제한 같은 개별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과 에너지, 산림, 농업, 교통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통합적인 기후 대응체계가 필요하다.
빙하가 사라지고 강이 마르며 산불이 장기화하는 현상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물 공급과 전력 생산, 물류와 식량, 지역경제를 동시에 흔드는 현실적인 생존 문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