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우근 칼럼] 분노의 불길, 사랑의 물길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생명을 살린다. 이우근 교수는 정의도 분노의 불길이 아니라 사랑의 물길처럼 흘러야 한다고 말한다.

불은 원소기호가 없다. 질량이 없기 때문이다. 불은 물질(物質, material)이 아니다.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니며, 순수한 기체도 아니다. 불꽃은 물질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들고나면서 발생, 지속되는 과정 즉 연소라는 화학작용의 연쇄적 산화반응이다. 불은 꺼지면 사라진다.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

연소에는 연료를 태우는 ‘불’과 불꽃을 이루는 ‘플라스마’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플라스마는 액체·고체·기체가 아닌 제4의 물질이라고 하는데, 불 자체는 플라스마가 아니지만 매우 높은 온도에 이르면 이온화되면서 플라스마로 변한다. 불은 정체가 불투명한 연소의 ‘현상’이다.

물은 액체이지만 온도가 내려가면 고체인 얼음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기체인 수증기로 바뀐다. 상태가 변할지언정 물의 정체는 명확하다. 물도 얼음도 수증기도 원소기호는 모두 H2O다. 물은 현상이 아니다. 실체를 지닌 물질이다. 창세기는 물이 가장 먼저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밝힌다(창세기 1:2, 6, 7). 물은 창조의 시작이며 생명의 근원이다. 불은 생명을 소멸시키는 연소작용, 물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젖줄이다.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않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준다.”(이사야 55:10) 물은 생명의 에너지요, 불은 죽음의 형틀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양극화와 불평등이 빚어내는 분노가 거칠게 꿈틀대는 중이다. 특권 내려놓기를 거부하는 정치인들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는 나라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부정과 불법의 무리들이 청년세대의 앞길을 짙은 어두움의 그늘로 뒤덮고, 노령화 시대의 무거운 짐을 몽땅 떠안게 될 젊은이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있다. 공의(公義)의 빛은 희미해졌고, 정의의 샘은 고갈됐다.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분노의 횃불로는 정의를 올바로 세우지 못한다. 역사상 어떤 혁명의 불길이 참다운 정의의 시대를, 진정한 평등 사회를 구현했던가.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새로운 특권층이 들어앉는 ‘주류세력 교체’의 권력이동(power shift)만 있었을 뿐, 새로 등장한 권력 또한 위선과 탐욕으로 타락의 길을 치달린 것이 뭇 혁명의 초라한 뒤태였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정의도 낮은 곳을 찾아가야 한다. 겸손은 정의의 본질적 속성이다. 오만한 정의는 불의(不義)의 가면일 따름이다. 아래로 흐르는 정의의 강물은 자만(自慢)의 호수가 아니라 사랑의 바다로 흘러든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득 찬 자리에서 비어 있는 자리로 흘러내리는 물은 바위에 부딪히면 돌아가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곤두박질치면서도 몸부림을 하거나 불평을 쏟아내지 않는다. 고요히, 쉼 없이 아래로 나지막이 흐르는 물길은 생명의 젖줄이고, 위로 높이 치솟는 불길은 죽음을 부르는 뱀의 혀놀림이나 다름없다.

“혀는 불이라.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야고보서 3:5) 정의는 횃불을 치켜들고 남에게 목청껏 큰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아니다. 나지막이 흐르는 강물처럼 스스로 묵묵히 빈 자리를 채워가는 것이다.

범죄의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정치꾼들이 정의의 횃불을 내흔들며 분노와 증오의 불길을 돋우면서 죄 없는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선동한다. 그렇지만 이글거리는 증오의 불길로는 정의를 이룰 수 없다. 보다 높고 신성한 공의는 물길처럼 낮고 고요한 사랑의 에너지로 이뤄간다.

그 사랑의 에너지는 상승(上昇)하는 불길이 아니라 하강(下降)하는 물길이다. 불은 현상이고, 물은 실체다. 높고 높은 하늘의 영(靈)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내려온 ‘신비로운 하강의 실체’를 품은 믿음이야말로 지극한 사랑의 갈구(渴求)요 염원일 터이다.

깊은 숲속 옹달샘 물은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 결국 바다로 흘러든다. 정의의 강물은 아래로 아래로 내리흐르며 마침내 사랑의 바다를 이룬다. 대해불기청탁(大海不棄淸濁)… 바다는 깨끗한 물, 더러운 물을 가리지 않는다. 흐린 물, 구정물을 다 받아들여 넉넉히 정화(淨化)해낸다.

정의는 분노의 에너지로 높이 치솟는 상승의 불길이 아니다. 사랑의 열정으로 스스로 내리흐르는 하강의 물길, 낮은 자리를 찾아 아래로 나지막이 흐르며 뭇 생명을 살려내는 사랑의 물길이다. “공의가 물처럼,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아모스 5:24) 정의는 불처럼 어떤 현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화학반응이 아니다. 물처럼 뚜렷한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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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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