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손모내기와 정선아라리, 양수리에서 만난 오래된 미래

모내기 삼매

지난주, 양수리 마을 청년들로부터 손모내기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손모내기라니,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궁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막내를 재촉해 달려갔다. 써레질을 마친 크고 작은 산골짜기 다랭이논 예닐곱 배미가 물을 가득 머금고 모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켠에서는 서넛이 모를 찌고 있었고, 논둑에서는 모꾼들이 논에 들어서지도 않은 채 늦다, 아니다, 이렇게 심어야 한다, 저렇게 심어야 한다며 논쟁이 한창이었다. 얼핏 봐도 농사꾼은 아니었다. 요즘 젊은 농사꾼들이 그렇듯 얼치기 농사꾼들이었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중모라고 했어요. 들모내기가 끝나야 소나기를 따라 모꾼의 발이 산골짜기로 다다붙는 게 법이라고 했어요. 자, 다들 모춤 잡고 논배미로 들어섭시다.”

그렇다. 다랭이 모내기는 바람 모내기다. 늦지 않게 하는 것이 적기다. 논이 물만 실으면 모를 꽂아줘야 한다. 그래서 다랭이논을 ‘천등바지기’라고 했던 것이다. 하늘이 천둥을 치고 물을 내려줘야 모를 내는 농사이기 때문이다.

모내기 새참 국수도 좋지만, 수박이며 시큼한 천도복숭아도 꿀맛

그래서 옛사람들은 밤꽃이 노란 모자를 쓰기 시작하면 모내기 적기라며 하늘이 천둥치기를 기다렸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때를 기다린 것이다. 아직 밤나무는 노랗고, 까맣게 익은 버찌가 모꾼들의 눈을 유혹한다. 지금이 바로 모때다.

누런 밤꽃이 지고 애밤송이가 맺혔을 때, 그 애밤송이를 따서 어깨죽지에 넣어도 따갑지 않으면 모를 꽂는 것이 다랭이농사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값을 해야겠다. 모춤을 논바닥으로 휙휙 던지며 논으로 들어선다. 꼭 이럴 때 필요한 노래가 있다.

저 건너 묵밭은
작년에도 묵더니
올해도
날과 같이
또 한 해 묵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노래를 따라 모두 우르르 논배미로 들어서고 줄꾼이 줄을 띄운다. 줄꾼인지 누군지 외친다. “이 벼는 우리 토종벼 ○○입니다!”

나는 아라리 한 곡을 더 뽑는다.

삭달가지를
뚝딱 꺾어서
군불을 때고
중방 밑이
다 타도록
잘 살아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그러자 줄꾼은 다시 외친다. “줄 넘어갑니다! 이 벼는 우리 토종벼 ○○입니다!”

마을 청년들이 주선한 전통 손모내기는 뜨거운 땡볕 아래서도 계속됐다. 막걸리와 수박, 과일을 곁들인 두 차례 새참은 꿀맛이었다. 여러 가지 토종 볍씨를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벌써 여러 해째 이어지고 있다. 양수리 청년들에게 고마운 박수를 보낸다.

노래를 부른 나의 정선아라리는 사실 노래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저 흉내에 가까웠다. 나는 양수리 청년들이 너무 고마워서 괜한 객기를 부린 것이다. 부르면서도 모두의 양해를 바랐다.

그런데 누군가 그 모습을 찍어둔 동영상을 보내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가 아라리 가락을 뽑아 날리며 논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럴 수가 있나 깜짝 놀랐습니다. 가을 벼베기 때도 꼭 함께해 주세요.”

그래요. 농요는 농사꾼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숲의 새와 짐승들이 부르는 노래와도 닮아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생명의 기운을 깨우는 주문 같은 것이지요. 저절로 힘이 솟아나는 자연의 힘입니다.

그래요. 알록아, 호연아, 새참 맛있게 먹었고 오늘 참 행복했다. 다들 고생했고. 고맙다. 정말 고마워.

모내기 짬짬이 막걸리도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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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

문화사랑방 인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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