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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초, 2년 반 동안 떠나 있던 본업인 회계사 일터로 돌아왔다. 6년 전에도 어공으로 발탁되어 4년 만에 본업으로 복귀한 적이 있었다. 두 번이나 사실상 ‘회계사 없는 회계사무소’로 본업을 방치한 탓이었을까. 그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30년 넘게 쌓아온 클라이언트들의 직업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직원들 또한 주인 잃은 사람들처럼 갈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흘러 어둡고 괴로운 시절’이 닥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도합 7년 가까이 바다에 쟁기질하는 동안, 문전옥답은 황폐해지고 있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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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을까. 돌아온 탕자가 회심한 듯, 직원들의 심신을 달래고자 회계감사와 법인세 신고 기한이 끝나는 4월 초, 직원들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황산을 다녀왔다.
15년 전에도 찾았던 황산은 옛 시인의 노래처럼 의연했다. 그러나 그때와 다름없이 3일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다. 소동파가 여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은 산중에 있었기 때문이라지만, 우리가 찾은 황산은 거센 비바람이 몰고 온 짙은 안개, 곧 비와 안개가 뒤섞인 우연(雨煙) 속에서 그 진면목을 드러낼 기미조차 없었다.
등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직원들을 ‘중국 최고의 명산’이라는 말로 겨우 설득해 데려왔건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으니 야속하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황산에 본격적으로 오르기 직전, 함께 간 직원 세 명이 두통과 복통을 호소했다. 낮에 먹은 음식과 장시간 버스 이동으로 인한 멀미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은 산행을 포기하고 산중 호텔에 머물기로 잠시 뜻을 모았다.
그때 큰언니가 나섰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아픈 세 사람은 남고, 멀쩡한 세 사람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황산 서해대협곡 등반에 도전하자고 결연히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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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놀랍게도 산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비바람이 잦아들고, 짙은 안개는 뭉게뭉게 하늘 위로 걷히기 시작했다. 황산 서해대협곡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산행 초반에는 비구름이 몰고 온 깊은 우연으로 원자관해(猿子觀海), 몽필생화(夢筆生花) 같은 이름난 기암괴석을 볼 수 없었으나, 안개가 걷히자 우리 모두는 서해협곡의 천길 낭떠러지 잔도를 걸으며 이름 모를 괴석과 봉우리가 연출하는 장엄한 경관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해협곡을 일주하며 우리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한 것은 웅장한 자연의 조각품만이 아니었다. 흑호송(黑虎松), 대왕송(大王松), 단결송(團結松) 등 황산의 명물 소나무와 마주했고, 고고한 숨결을 내뿜는 하얀 목련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오색 색동옷을 입은 두견새도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눈인사를 건네곤 했다.
조물주의 천지조화에 취해 아슬아슬한 잔도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해협곡 1환을 마친 뒤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산중턱으로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탔다. 서해협곡 2환의 시작이었다.

다시금 깊은 비구름이 짙어지며 우리 일행은 우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침내 깔딱 계단길을 숨가쁘게 오르며 황산의 제2봉우리 광명정 정상에 올랐다. 광명정은 1979년, 75세의 덩샤오핑이 황산을 시찰하며 올랐던 곳이라, 정상에 선 기쁨도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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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정 정상에서 우리의 숙소 서해반점까지 가는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광명정을 뒤로하고 비래석(飛來石) 가까이 다가갔을 즈음, 아주 낯선 해를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깊은 우연 속 하늘 위에 석양(夕陽)이 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저 너머 숙소 서해반점의 불빛인 줄 알았다. 설마 저녁놀을 준비하는 붉은 해가 비구름을 뚫고 나올 줄을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우연 속 붉은 석양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그 순간 파우스트도 “멈추어라, 아름다운 순간이여!”라고 외쳤을 것만 같았다.
황산에서 마주친 우연 속 석양은 비래석처럼 어디선가 날아와 내 마음의 태양으로 영원히 자리 잡을 것이 분명했다. 과연 황산을 다녀온 뒤에는 태산을 비롯한 다른 산은 굳이 오를 필요가 없다(黃山歸來不看嶽)는 말이 허사가 아닌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