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성장사를 한 인물의 생애로 풀어낸 <제3의 불을 밝히다>(도서출판 청어, 352쪽, 2만3000원)는 ‘원자력 전사’라 불릴 만한 과학기술인의 궤적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낸 기록이다. 검은 바탕 위 금빛 원자 문양이 상징하듯, 이 책은 ‘인류의 세 번째 불’인 원자력 에너지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을 조망한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기술 서적을 넘어선다. 최빈국에서 출발해 세계 5위 원전 강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산업사와 개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 시대의 축적과 도약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인터뷰 형식으로 전개되는 서술은 현장의 긴장과 선택, 그리고 축적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한국형 원전 ‘패키지 수출’의 완성 과정이다. 저자는 그 중심에서 기술 도입과 국산화, 그리고 해외 진출까지 전 과정을 이끌었다. 더 나아가 차세대 에너지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도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원자력의 미래까지 연결한다. 인공지능 확산, 전기차 보급, 기후위기 대응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오늘, 원자력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 속에서 그의 역할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의 또 다른 무게는 저자의 삶 자체에서 비롯된다. 그는 과학기술인에 앞서 6‧25전쟁 당시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KLO부대 게릴라 요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전쟁과 산업화라는 두 격랑을 모두 통과한 그의 이력은, 기술 발전이 결코 시대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로로 국가유공자와 과학기술유공자라는 두 가지 명예를 동시에 받은 점은 그의 삶이 지닌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저자의 탁월한 외국어 능력은 한국 원자력 기술의 국제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어를 비롯해 독일어, 일본어, 그리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걸어 다니는 외국어 사전’으로 불리며 기술 도입과 국제 협력의 최전선에 섰다. 특히 국제원자력학회 협의회(INSC) 회장으로 선출된 이력은 한국 원자력 기술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3의 불을 밝히다>는 개인의 회고를 넘어 한국 현대 산업사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원자력의 기록이자, 미래 에너지에 대한 성찰의 텍스트다. 원자력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넘어, 이 책은 한 시대를 살아낸 기술자의 치열한 선택과 헌신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되묻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