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면 건축을 하자.”
내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는 단순한 결심이 아니었다. 목숨을 건 사명이었고, 더는 두려움 뒤로 숨지 않겠다는 고백이었다.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재정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의 대부분이 내가 아니라 아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했고, 그래서 더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아내는 별다른 감정의 기복 없이, 길게 말하지도 않고,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 침묵은 “가자”라는 허락이었고, 나를 다시 세워주는 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건축을 위한 ‘로뎀나무 물붓기 7000’을 시작할 수 있었다.
‘7000’이라는 숫자에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성경에서 완전함과 충만함, 거룩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완전수가 담겨 있다. 히브리어로 ‘세바(Sheba)’는 ‘약속하다, 맹세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어 하나님의 언약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7000’은 단지 목표금액을 모으기 위한 캠페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약속이자 우리의 믿음의 깃발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숫자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시작하시면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고백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학교다운 학교를 세우는 꿈을 단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흔적 속에서, 고려인 아이들이 학력 인정이 되는 대안학교에서 안정적으로 배우고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인재로 활동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대등하게 서서 이 나라의 발전에 한 몫을 감당하는 모습. 나는 그 장면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이 꿈의 첫 페이지가 학교였고, 그 학교의 완성은 건축이었다. 지금 우리가 짓고 싶은 것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아이들의 내일이다.
하지만 ‘학교 건축’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벽의 기도는 길어만 간다. 매일 나는 혼자 건축가가 되어 도면을 그린다. 수백 장의 학교 도면은 나로 하여금 간절함으로 지우고, 눈물로 다시 그리게 한다. 선을 긋고 또 지우는 그 반복을 하다 보면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어느새 동이 튼다.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가끔은 의심이 든다. ‘혹시 내가 헛된 생각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때를 믿는다. 그래서 꿈을 버리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이 만 원씩, 7천 명이 물을 붓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실 거라는 믿음 위에서, 얼마 전 아내는 2천만 원의 물을 먼저 부었다. 그 물붓기는 하나님이 아내의 마음을 통해 치신 ‘시작 종’ 같았다. 이제 정말 로뎀나무 물붓기 7000은 계속되어질까?
그 답을 하나님은 어느 여름날 오후,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보여주셨다. 학교 사무실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한 가족이 있었다. 워낙 논 한가운데 있는 학교(교회)이고, 이곳에서 사역한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기에 마을에 누가 사는지 웬만하면 다 아는데, 그분들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전도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러자 남자분이 되물었다. “목사님이세요?”
나는 웃으며 “네”라고 답했고, 거의 본능처럼 허름한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오시라고 청했다. 사실 속으로는 ‘설마 들어오시겠나’ 싶었다. 그런데 그분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온 가족이 비좁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린 딸 둘이 있었고, 아내 되시는 분은 사무실이 낯설고도 신기한지 자꾸 주변을 둘러보는 더 어린 딸을 달래며 남편의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찡하게 했다. 나는 급히 묻고 싶었지만, 최대한 점잖게 물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사님…”
그 말에 내가 너무 급했는지 얼른 끼어들었다. “혹시 집사님이신가요?” 그러자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예상 밖이었다. “제가 A회사에서 퇴직을 하게 되었는데요. 퇴직금 일부 500만 원을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 후원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원래 탈북 아이들을 위한 곳에 후원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고려인 학생들이 있는 곳에 후원해야겠다는 감동이 와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하나님이 “봐라, 내가 하고 있지 않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며 로뎀나무 건축을 위한 물붓기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 후원을 물붓기에 사용하겠다고 전했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분들이 찾아와 물을 부어 주는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짧게 기도했다. “아… 하나님이 하고 계시구나.”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대화를 마치고 가족이 차로 돌아가는데, 아이들이 셋이나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 집사님의 이름은 박성우 집사님, 부인 되시는 분은 채유진 집사님이었다. 며칠 후 물붓기 통장에 ‘박성우’라는 이름이 이체 내역으로 찍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이름을 한참 바라봤다. 그 500만 원은 단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열고 계신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훗날 박성우 집사님 가정은 (첫째 아이 이름 천휘: 하나님을 영화롭게, 둘째 혜원: 은혜의 근원, 셋째 천규: 주의 율법을 즐거이 행하는, 막내 천명: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믿음을 지키는, 그리고 선교의 꿈들로 가득 찬 분들이었다. 훗날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건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어 가는 징검다리로 사용되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나는 결심했다. ‘현황판을 만들어야겠다.’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너희가 다니는 이 학교를 위해 누군가가 마음과 땀과 재정을 붓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현황판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도 ‘학교 짓기’에 십시일반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스베타가 맡아 주었고, 멋있는 ‘로뎀나무 물붓기 현황판’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물붓기 후원자들의 이름을 잎사귀와 열매로 달아 주렁주렁 맺히게 하기로 했다. 7천 명이 고려인학교를 짓기 위해 하나가 되어 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닐 학교, 그리고 고려인 후배들이 다닐 대한민국 최초의 고려인학교 건축을 위한 로뎀나무 물붓기 나무에 자기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나도 7천 명 중 한 명이 될래요.” 잎사귀 하나를 조심스레 붙이는 작은 손이 내게는 너무 크게 보였다. 그 손은 “나는 여기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시작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벌써 다음 물붓기를 준비하시고, 누군가의 마음에 또 한 방울을 얹고 계신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