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육

[소학섭의 고려인청소년㉓] 블랙핑크 제니의 1억 기부…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에 이어진 선한 릴레이

왼쪽부터 지성, 하랑, 션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학교 건축 기부금 릴레이가 시작되다

하랑이와 지성이의 발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두 아이가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은 단순한 마라톤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고려인 청소년들의 꿈을 세우기 위한 작은 시작이었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조용한 울림이었다. 처음에는 두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고려인 청소년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 그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꿈을 키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하랑이와 지성이 주변의 어른들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주었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먼저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도 컸을 것이다. 두 아이는 힘든 마라톤을 통해 자신들의 마음을 전했고, 그 진심은 결국 큰 열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성이와 하랑이는 한국해비타트에 1천만 원을 기부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천만 원이나 기부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선한 시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랑이의 아버지 션님에게까지 이어졌다.

션님은 기부 마라톤을 통해 세계 최초의 루게릭요양병원 건립을 이끌어낸 분이다. 나는 하랑이를 보며, 선한 영향력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다시 느꼈다. 아버지의 선한 발걸음이 아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참 귀하게 쓰시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특별한 일정이 없던 션님이 하랑이의 이야기를 듣고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인 고려인 청소년들을 위해 한국 최초의 고려인학교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품으신 것 같았다.
나중에 션님의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가 있다. 션님은 오래전부터 언젠가 학교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 하랑이가 “학교를 짓고 싶다”고 말했을 때, 션님은 매우 놀랐다고 했다. 그것은 단순한 아이의 말이 아니라, 오래전 자신이 마음속에 품었던 약속과도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랑이와 지성이의 기부 마라톤은 그렇게 하나의 불씨가 되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점점 더 큰 불꽃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션님에게 전화가 왔다. “목사님, 블랙핑크 제니 아시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도 막내딸 성령이가 중학교 때 흥얼거리던 “뚜두뚜두”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네, 알지요.” 그러자 션님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블랙핑크 제니가 하랑이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해비타트에 1억 원을 기부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메어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감사함과 놀라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니… 제가 어떻게 하면 되지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션님은 다정하면서도 아주 짧게 대답했다. “목사님은 목사님 일 하시면 됩니다.”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마치 하나님께서 “너는 네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블랙핑크 제니가 안성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와 고려인 청소년들을 세상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알리고 싶었던 이름,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꿈을 믿어 준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와 ‘고려인 청소년’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관심 속에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조감도와 건축 도면 작업에 함께했던 호서대학교 건축학과 신우회 학생들도 학교 캠퍼스가 이 소식으로 떠들썩해졌다고 전해 주었다. 학교 건축을 위해 재능기부를 해 주신 건축학과 이윤길 교수님께서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를 묵묵히 섬겨주고 계시는 권사님은 하염없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모의 눈에도 감사의 눈물이 고였다. 그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던 길,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고 계셨던 길이라는 생각에 모두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블랙핑크 제니 아니?” 그러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얼마나 유명한 가수인지 실감했다. 목사인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블랙핑크 제니의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도 미안했다. 블랙핑크 제니가 팬클럽 BLINK의 이름으로 전한 기부는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였다. 그것은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너희의 꿈은 소중하다”고 말해 주는 따뜻한 응원이었고, 우리 학교에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하랑이와 지성이의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 기부 마라톤은 이제 학교 건축 기금을 위한 릴레이 기부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한 아이의 꿈이 또 다른 어른의 결단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기대한다. 이 선한 릴레이가 또 누구의 마음을 두드릴 것인가. 또 어떤 사람이 고려인 청소년들의 꿈을 위해 함께 달려올 것인가.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믿고 돌아온 아이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들을 이방인이나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 정도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어렴풋한 역사 속 인물처럼만 여겨왔던 디아스포라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너희는 이 땅의 소중한 아이들”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다. 그들이 마음껏 배우고, 꿈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집을 세우는 일이다.

하랑이와 지성이의 발걸음은 끝나지 않았다. 그 발걸음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되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믿는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선한 일은 반드시 아름답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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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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