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세계

[김중겸의 경찰 이야기] 미크로네시아 경찰은 왜 ‘조정자’가 되었나

미크로네시아

미크로네시아 연방(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 FSM)은 태평양 서부에 흩어진 섬들로 이루어진 국가다. 전체 영토 면적은 약 702㎢에 불과하지만,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수백만 ㎢에 이른다. 육지는 작고 바다는 넓다. 이 독특한 지리 조건은 국가 운영 방식은 물론, 경찰과 치안 체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미크로네시아는 얍(Yap), 추크(Chuuk), 폰페이(Pohnpei), 코스라에(Kosrae) 등 4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섬과 섬 사이 거리가 수십~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다 보니, 중앙집권적 치안보다는 주(州) 단위의 지역경찰 중심 체계가 형성돼 있다. 연방 차원에는 법무부 산하 국가경찰 기능이 존재하지만, 실제 일상 치안·교통·경범죄 대응은 각 주 경찰이 맡는다.

미크로네시아 순찰차

경찰의 역할도 지리와 생활 방식에 맞게 조정돼 있다. 순찰차에는 ‘Emergency 911’ 표기가 붙어 있지만, 신고 접수 이후 현장 도착까지는 섬의 규모와 도로 사정, 선박 이동 여부에 따라 시간이 크게 달라진다. 일부 외딴 섬에서는 경찰이 차량이 아닌 보트나 도보로 이동하기도 한다. 해안선과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국가인 만큼, 해상 치안과 수색·구조는 중요한 임무다.

미크로네시아 경찰 순시선

총기 문화 역시 미크로네시아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총기 소유와 사용은 극히 제한적이며, 경찰 훈련에서도 ‘Gun Safety’ 교육이 강조된다. 사회 전반에 철도·군대·징병제가 없었던 역사적 배경과, 공동체 중심의 전통 질서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다. 분쟁은 대개 씨족과 마을 단위에서 중재와 합의로 해결돼 왔다.

전통 화폐인 ‘라이(Rai)’ 스톤 머니는 미크로네시아 사회의 질서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돌로 만든 이 화폐는 실제로 이동하지 않아도 소유권 이전만으로 거래가 성립한다. 경찰과 법이 개입하기 이전부터 공동체의 기억과 합의가 질서를 유지해온 셈이다.

미크로네시아 소년경찰대

한편 곳곳에 남아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차와 군사 유적은 미크로네시아가 지정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의 흔적 위에 세워진 현재의 미크로네시아는, 강한 무력 대신 느슨하지만 지속력 있는 질서를 선택해 왔다.

작은 섬, 넓은 바다. 미크로네시아의 경찰과 치안은 이 단순한 지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곳에서 질서는 법 이전에 공동체였고, 경찰은 통제자가 아니라 조정자에 가까웠다. 태평양의 섬들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국가 운영 모델이다.

미크로네시아 국제공항

김중겸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부총재, 이실학회 창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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