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단테’에서 ‘세월호’까지…연상의 자유와 단정의 절제 사이

단테 <신곡> 표지

단테를 좋아한다.

학생 시절 처음 읽은 <신곡>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특히 ‘지옥편’은 더욱 그랬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형벌의 세계가 그 안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단테에게 매료된 이유는 단순히 문학적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을 추방하고 핍박한 사람들을 저마다의 죄에 걸맞은 지옥에 배치한 그의 상상력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나는 월계관을 쓴 단테의 작은 흉상을 구입했다. 매부리코의 시인은 이후 오랫동안 내 서가의 한자리를 지켜왔다. <신곡>을 읽으며 인간의 변신과 형벌의 상징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훗날 내가 변신을 주제로 글을 쓰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단테라는 이름이 뜻밖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어떤 상품이 4월 16일에 출시되었고, 그 이름이 ‘단테’였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단테라는 이름에서 영화 <Dante’s Peak>를 연상하고, 다시 화산 폭발과 재난의 이미지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논리였다.

이 이야기를 접하며 나는 문득 오컴의 면도날을 떠올렸다. 오컴의 면도날은 여러 설명이 가능할 때 가장 적은 가정을 필요로 하는 설명을 우선하라고 말한다. 단테라는 이름은 세계문학사의 거장 단테 알리기에리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고, 출시일 역시 마케팅 일정의 결과일 수 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추가 가정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단테에서 ‘Dante’s Peak’를 거쳐 화산 폭발과 재난,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연결하려면 여러 단계의 연상과 해석이 필요하다.

물론 집단적 비극을 기억하려는 사회의 감수성 자체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특정 날짜와 상징에 대해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공동체의 기억이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연상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것이 실제 의도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여기서 히컴의 격언이 등장한다. 의학에서 히컴의 격언은 “환자는 원하는 만큼 많은 질병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증상을 하나의 진단으로 설명하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회적 논란도 마찬가지다. 상품명 선정에는 문학적 취향이 작용했을 수 있고, 출시일 결정에는 실무적 판단이 개입했을 수 있다. 또 누군가는 그 상징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현실은 종종 하나의 원인보다 여러 요인이 겹쳐 이루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상의 자유와 단정의 절제 사이의 균형일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연상의 사슬이 길어질수록 그것이 곧 의도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컴의 면도날은 불필요한 가정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히컴의 격언은 세상이 언제나 단순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두 원칙이 만나는 지점에 단테가 서 있다.

지옥을 상상했던 시인은 인간이 얼마나 복잡하게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때때로 단테 자신도 놀랄 만큼 먼 곳까지 연상의 사다리를 뻗어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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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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