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칼럼

보수와 진보, 모두 끝자락에 서다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독주와 파행의 연속

“대한민국은 정치만 잘하면 선진국이다.”
이 말은 대한민국에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정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미 선진국의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문제는 정치가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이고, 수출·제조·기술 경쟁력도 여전히 강하다. 고등교육 수준과 디지털 적응력, 시민의식도 성숙 단계에 올라 있다. 1인당 GDP는 4만 달러에 이르렀고, 세계 최고 수준의 학습·노동·혁신 경험을 축적해 왔다. 그럼에도 정치가 늘 문제로 지목되는 이유는 시스템이 아니라 역할을 잘못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시대의 과제를 정리하고, 그 과제를 수행할 주체 세력을 조직하며, 갈등을 조정하고, 성과를 다음 세대로 질서 있게 넘겨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이 모든 기능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과거 보수 정치의 성공 공식은 분명했다. 시대 과제를 정확히 읽고, 이를 수행할 집단을 만들어냈다. 이승만 정부 시기에는 귀국 엘리트들이 정치를 정리하며 건국을 완성했다. 박정희 정부 시기에는 건국 세력을 정리하고 관료·기술자·기업가로 구성된 산업화 주체 세력을 형성해 조국 근대화를 완수했다. 전두환·노태우 체제는 산업화 체제를 정리하며 과도한 국가 폭력을 통제해 붕괴를 막는 역할을 했다.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서는 군사정권 세력을 정리하고 문민화를 안착시키며 민주주의의 문화를 완성했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시대 과제와 주체 세력, 그리고 결단이 있었다. 그러나 김영삼 이후 보수 정치는 이 토대를 스스로 포기했다. 주체 세력 형성을 멈추고 스타 정치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내부 인재 육성과 장기 비전, 계층과 세대의 대표성은 사라졌고, 외부 스타 영입과 단기 대선용 캠프가 정치의 중심이 됐다. 선거가 끝나면 캠프는 해체됐고, 패배하면 계파 분열이 반복됐다. 정당은 조직이 아니라 팬덤이 되었고, 선거용 용병 집합소로 전락했다. 이기면 캠프 사람들끼리 나눠 먹고, 지면 붕괴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좌파와 운동권 정치 역시 마지막 페이지에 와 있다. 이미 끝자락이다. 달성된 목표를 40년째 반복하고 있다. 김대중 이후 좌파 운동권은 민주화, 직선제, 지방자치, 인권, 언론 자유, 노동권, 지역 차별 해소라는 역사적 요구를 사실상 모두 관철했다. 그럼에도 정치 방식은 여전히 1980~90년대의 점거·농성·투쟁 프레임과 선악 이분법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목표가 아니라, 끝난 시대의 언어와 전술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생존보다 삶의 질, 이념보다 효율, 투쟁보다 해결이다. 명분보다 결과를 본다. 결정적 변화는 국민 소득 4만 달러와 정치 수준 1만 달러의 괴리에서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주류는 40대 이하, 디지털 네이티브, 글로벌 감각을 지닌 세대다. 경쟁과 성과에 익숙하고, 권위와 이념, 진영 정치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 세대에게 운동권 정치, 스타 정치, 계파 정치, 감정 정치는 관심 밖이다. 더 이상 정치가 투쟁의 무대여서는 안 된다. 국가 운영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단순한 정권 교체의 시기가 아니다. 세대 교체이자 시대 교체, 정치 교체의 시기이며 동시에 절호의 기회다. 보수는 주체 없는 정치의 말기에 와 있고, 진보는 이미 끝난 투쟁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 정치 불신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기느냐가 아니다. 누가 다음 시대를 설계하느냐다. 산업화 세대가 국가를 만들었고, 민주화 세대가 자유를 넓혔다면, 이제 4만 달러 세대는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의 기준은 분명하다. 이념이 아니라 문제 해결, 진영이 아니라 능력, 스타가 아니라 팀, 캠프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대한민국은 망해가는 나라가 아니다. 정치만 교체되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나라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정치와 세대에 맞는 리더십, 그리고 국민 수준에 맞는 국가다.

이정현

3선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정무·홍보수석 역임, 전 새누리당 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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