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2026년 새해 아침의 편지…’耕’, 묵정밭을 다시 갈며

여류 이병철 짓고 쓰다

2026년 새해 첫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올 한 해를 열어가는 첫 글자로 ‘경(耕)’을 가슴에 품습니다.
씨앗을 묻기 전에 먼저 묵정밭을 가는 마음으로 새해를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무력의 언어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갈수록 심화하는 기후 재앙과 경제와 생태계 기반의 붕괴는 인류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또한 치열한 경쟁과 확정 편향에 의한 진영 간, 세대 간의 이념과 가치관의 차이로 서로를 향한 불신과 배제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립과 분열로 인해 이념은 사람보다 앞서고 다름은 곧 적대가 되었으며 약자를 향한 시선에서는 연민보다 차가운 경계가 앞서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어느새 낯설지 않은 시대의 표징이 되었고, 그 길은 결국 모두가 고립되고 스스로를 메말라가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이 풍토, 이 토양을 바꾸지 않고서는 상생과 통합의 길로 할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라의 안위와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붙이의 생존 또한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의 글자로 ‘경(耕)’을 택했습니다. ‘경(耕)’의 자전적 의미는 ‘손에 쟁기(耒)를 들고 밭(井)을 갈아엎어 흙을 부드럽게 만드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딱딱하게 굳은 땅을 갈아엎어 공기가 통하게 하고 씨앗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나에게는 이 ‘경(耕)’란 글자가 띠풀과 가시덩굴로 우겨져 숨 막혀 죽어가는 땅을 다시 갈아엎어 생명의 숨결을 열어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돌아보면 지금 내 마음 밭과 세상의 밭 모두 그렇게 묵정밭처럼 띠풀과 가시덤불만 짙게 우겨지고 그 속에서 돋아나는 것은 편견과 고립과 불신과 경계의 차디찬 시선의 독초들 뿐이라 하겠습니다.

내 안과 우리 사회의 이 묵정밭을 새롭게 갈아엎지 않는다면 우리 안의 두려움과 탐욕, 편견과 단절의 가시덤불은 더 깊게 뿌리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는 독초 이외의 어떤 씨앗도 자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갈 생명의 밥상 또한 미련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경(耕)’이란 쇄신과 일깨움의 언어라 할 수 있습니다.

닫힌 마음과 낡은 생각을 뒤집어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일, 이미 굳어버린 관성과 사유의 땅을 다시 살아 있는 흙으로 되돌리는 일이 그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오랜 그 묵정밭을 갈아엎을 수 있다면 가장 척박했던 땅에서도 새롭게 바람이 통하고 새로운 씨앗은 힘차게 다시 돋아나리라 믿습니다.

올해, 우리 자신의 마음 밭을 먼저 갈고 그렇게 자신의 묵정밭을 갈아엎는 이들과 더불어 세상의 묵정밭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갈아엎은 그 새 땅에 감사와 공감, 연대와 돌봄, 모심으로써 함께 사는 그 상생과 환대의 새 하늘을 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마음 모읍니다.

쟁기를 잡은 손이 비록 떨리고 힘이 없지만 그래도 함께 마음을 모아간다면 생명의 새싹을 튼실하게 움틔우는 작은 텃밭이라도 일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새해에는 갈아엎은 그 땅에서 새 씨앗들이 움터나서 환하게 꽃 피어나기를, ‘경(耕)’을 품은 우리의 가슴에서 이미 그렇게 피어나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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