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시체제 속 인간성과 존엄을 되묻다”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비견할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2006). NYT(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순위는 48위였지만,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작품은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한 사람의 변화와 선택을 통해 ‘인간에 대한 예의’란 무엇인지 조용히 묻는다.
1984년 동독. 냉철한 비밀경찰 비즐러는 체제에 충성하며 국민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는 체제에 반하지 않는 예술인 커플,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명분은 정치적 감시가 아니라, 권력자의 사적 욕망이었다. 문화부 장관 헴프가 크리스타를 차지하기 위해 권력을 동원했고, 상관은 줄서기 욕심에 이 작전에 동참했다.

감시가 시작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비즐러는 이 커플을 감시하며, 오히려 그들 삶의 진정성과 따뜻함에 스며든다. 베토벤 연주에 눈물을 흘리고, 브레히트 시를 읽으며 삶의 온기를 느낀다. 그렇게 그는 점차 감시자가 아니라 수호자로 변한다. 드라이만 일행이 동독의 현실을 서방 언론에 알리려는 계획에도 비밀리에 협조한다.
결국 권력은 크리스타를 굴복시키고, 그녀는 드라이만을 밀고한 후 비극적 선택을 한다. 슈타지가 들이닥치기 직전, 비즐러는 결정적인 증거였던 타자기를 몰래 빼돌려 파괴한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눈밖에 나 한직으로 좌천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통일 후, 드라이만은 자신을 감시했던 인물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도청 보고서에 기록된 작전명 ‘HGW XX/7’. 그는 한직에 물러난 비즐러를 찾아가지만 말을 걸지 않는다. 2년 후, 비즐러는 서점에서 드라이만이 쓴 신간 소설 『선한 이들의 소나타』를 발견한다.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는 책을 포장해주겠느냐는 직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아니요. 제가 읽을 겁니다.”
<타인의 삶>은 감시와 폭력의 시대에도 인간다움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조용히 증명해낸다. 감시자는 감시당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자신을 회복했고, 표현은 음지를 비추며 인간의 존엄을 되살렸다. 이 영화는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야 할 예의란, 바로 ‘사람답게 대하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