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이프스타일

[여류 이병철 단상] 한 권의 몽골 순례집, 한 해의 마침표

2025 한 해 수고들 많으셨다. 2026 어떻게 맞을 것인가?

엊그제 사천의 강달프와 엘리 님의 흙사랑농장 안의 집, 보인재(輔仁齋)에서 지난 6월 열흘간의 몽골 생태영성순례에 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는 「2025 몽골 생태영성 순례집」 출간 기념과 송년 모임이 있었다.

이 집의 당호인 보인재(輔仁齋)는 익산의 남곡 형과 내가, 강달프 내외가 새로 마련한 이 집을 축하하러 갔을 때 함께 떠올려 지은 이름이다. 논어의 “이문회우 이우보인(以文會友 以友輔仁)”에서 따온 것으로, 새로 마련한 이 거처가 뜻을 함께하는 벗들이 모여 서로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다. 그제의 모임은 그 이름에 걸맞게 뜻을 함께하는 벗들의 송년 모임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이병철>

우리는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3일까지 열흘 동안의 일정으로 몽골 일대를 ‘생태영성순례’라는 이름으로 다녀왔다. 내가 ‘생태영성순례’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것은 2001년, 지구 행성의 성산(聖山)이라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순례 때부터인데, 그때 공식적으로 내건 이름은 ‘지구 행성 생태영성 순례’였다. 이를 계기로 이후 바이칼과 티베트 순례 등을 이 이름으로 이어왔고, 최근에는 다시 바이칼과 산티아고 순례 또한 이 이름으로 벗들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몽골 순례 목차

그런 맥락에서 이번 몽골 여정도 같은 이름을 내걸고 나를 포함해 24명이 함께 다녀왔으며, 그 순례의 기록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 163쪽 분량의 순례집으로 묶어냈다. 이런 형태의 순례집을 만든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 이번 작업에서는 편집위원을 맡은 와월당, 조약돌, 보더기 님의 수고가 특히 컸다. 컬러판으로 인쇄된 이 순례집에는 검돌 화백의 그림이 더해져 한층 더 충실하고 아름다운 책으로 완성되었다. 수고해 준 편집위원들과 함께해 준 순례단원들께 새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어제 송년회를 겸한 모임에는 순례를 함께했던 순례단의 절반인 12명이 참석했다. 순례단은 강원도에서부터 제주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날 모임에는 강원도 원주와 서울, 해남과 광주, 산청과 김해, 함안에서 순례단의 벗들이 모여 자리를 함께했다. 각자 오면서 나눌 것들도 챙겨왔다. 검돌 화백은 내년 1월 출간 예정인 「화가의 시절 인연」을 출판사에서 미리 받아 나누어 주었고, 해남 설아다원의 마야 님은 다원에서 직접 만든 차를 한 통씩 선물로 건넸다. 제주에서는 잎새 님이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밀감 두 상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사진 이병철>

지난 순례를 마칠 즈음, 연말 송년 모임을 이곳 보인재에서 하자고 제안했던 엘리 님은 삼천포항까지 나가 생선회를 푸짐하게 장만하고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을 잔칫상처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자정을 넘기며 먹고 마시고,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설아다원의 마야 님은 지난해 ‘흥부가’를 완창했는데, 이번에도 북까지 챙겨와 흥보가의 흥겹고 구성진 몇 대목을 가슴 깊은 울림으로 들려주었다.

<사진 이병철>

이번 순례를 기획하고 함께했던 나로서 특히 고마웠던 것은, 그 몽골 생태영성순례가 올 한 해 가장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말을 여러 분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비포장 진창길을 하루 종일 말을 탄 듯 흔들리며 달려야 했고, 에어컨이 고장 난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고생도 했지만, 그런 불편함마저 몽골의 속살이라 할 야생적인 체험을 더 깊게 해 주었다고들 했다. 그래서 더 오래,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순례집에도 그런 소감들이 담겨 있었다.

사천의 흙사랑농장 보인재는 말 그대로 동물농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여러 가축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다. 주인인 강달프 님이 워낙 가축을 좋아해 농장에 딸린 야산에 방목에 가깝게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이 농장에서 가장 많았던 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으로 어쩔 수 없이 모두 살처분했고, 지금은 흑염소를 중심으로 잘생긴 커다란 당나귀 한 마리와 닭, 개가 함께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흑염소 <사진 이병철>

이 농장을 앞으로 흑염소 농장으로 키워 가는 것이 좋겠다는 데 모두 의견을 모았다. 초장골(草獐谷)이라는 이름처럼 입지 조건이 좋고, 발효 사료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설비도 이미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강달프 님과의 인연도 어느새 50년에 가까운 세월이 되었다. 오랜 농민운동의 동지였던 그가, 한때 몸담았던 정치의 시간을 말끔히 씻어내고 온전히 생명의 농삿군으로 돌아온 것이 나로서는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새해부터는 우리 내외와도 틈틈이, 열심히 잘 놀기로 했다.

강기갑 전 의원과 당나귀 <사진 이병철>

해남 설아다원의 마야 님은 내년부터 3년을 안식년으로 삼아, 그동안 매여 있던 다원 농장일을 당분간 부군과 딸에게 맡기고 북 하나를 들고 전국과 세상을 유랑하는 ‘삶의 여행학교’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그 멋진 결심을 성원하고 지지했다. 마야 님의 앞날에 건강과 신명이 함께하기를 마음 깊이 축원한다.

나 또한 새해의 계획 가운데 하나로, 6월에 다시 생태영성순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실크로드의 핵심 코스라 할 수 있는 신장 위구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여정이다. 그 순례길 또한 벌써부터 설렘으로 다가온다.

오늘 숲마루재로 돌아오는 길에 보인재 안주인 엘리 님이 이 지역 해안에서 건져 올린 귀한 생선인 볼락으로 담근 무김치 한 통을 챙겨 주었다. 몇 해 전에도 그 김치를 얻어먹고 그 맛이 잊히지 않아, 다음에 볼락이 구해지면 또 나눠 달라 했더니 이번에 어렵게 구해 잊지 않고 챙겨 준 것이다. 덕분에 올겨울은 그 김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엘리 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매번 이렇게 얻어먹기만 하니 갈수록 더 뻔뻔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순례단의 벗들과 나눈 이 시간 또한 한 편의 순례였으리라. 세밑의 순례처럼 모인 이 모임을 통해 다시 또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챙긴 것 같다. 순례단의 벗들과 천지신명께 깊이 감사드린다.

행진 <사진 이병철>

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