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을 설치고 또 설쳤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서툰 발걸음으로 낯선 제주의 공기를 마주해야 할 아이들, 건강하게, 씩씩하게,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밤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을 틀어쥐고 놓아주지 않던 건 ‘새벽 5시’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그 시간까지 모여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대절 버스를 타야 한다. 그동안 현장체험을 갈 때마다 늘 변수가 있었다. 갑자기 아픈 아이, 도저히 깨워지지 않는 아이,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뛰어오는 아이…그래서 출발 시간마다 가슴을 졸이며 전화를 붙들고 있었는데, 제주는 그런 걱정의 ‘급’ 자체가 달랐다.
이번에는 팀별 자율 집합, 한 명이라도 준비되지 않으면 팀 전체가 제주에 갈 수 없다. 단호하게 원칙을 말해 놓고도 솔직히 나는 너무 불안했다. 출발부터 팀장은 책임과 헌신의 리더십을, 팀원들은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을 배워야 했다. 그렇게 수많은 생각을 품고 있는데 어느새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새벽 4시, 알람소리가 방을 가르며 울렸다. 이상하게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 정말 출발하는구나.” 피곤보다 설렘이 먼저 다가왔다.
옷을 서둘러 챙겨 입고,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면 바로 연락해 달라고 오필준 부장 선생님께 부탁을 드린 뒤 운전대에 올랐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수많은 자동차 불빛이 고속도로를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오필준 부장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왜요??” 너무 급한 나머지, 이유를 묻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이들 모두 전원 집합해서 대절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안도의 숨, 감사의 숨,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벅참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이렇게 우리는 전원 모두 무사히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행 비행기는 김포를 둘러 높이 올라갈 때 창 아래로 지나가는 불빛들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가 얼마나 아름다운 불빛으로 보이는지 운전자는 모른다.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인지 스스로 모르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고려인 청소년의 정체성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품어 줘야 할 대한민국은 이들을 외국인으로, ‘우리 밖의 누군가’로 바라본다. 하지만 본국에서 이 아이들은 분명히 빛나는 별이었다. 그런 별들이 한국에 온 지 겨우 석 달이 지나면,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불빛을 지니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말도, 표정도, 꿈도 점점 작아지며 자존감의 대부분을 흘려보내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제주의 시간이 다시 자기 존재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제주행 비행시간은 약 50분. 평소 같으면 길게 느껴졌을 그 시간이, 오늘만큼은 유난히 짧게만 느껴졌다. 벌써 창밖으로 제주의 바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고, 아이들은 그 풍경 하나에도 숨을 삼키며 탄성을 터뜨렸다. 비행기가 랜딩을 위해 제주 하늘을 크게 한 바퀴 도는 동안, 제주를 바라보느라 얼굴을 쭉 내밀고 창문 쪽으로 신기하듯 쳐다보는 아이들, 그러는 사이 “쿵!” 짧은 진동과 함께 제주국제공항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벨트 사인이 꺼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이 하나 더 크게 나왔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스스로에게 조용히 속삭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이 공항 출국장으로 나오는 동안 나는 서둘러 렌트카를 빌렸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미 출국장을 빠져나와 자신들이 정한 코스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아이들의 캐리어를 받아 놓고 나를 기다리는 사이, 아이들은 각 팀의 팀장을 중심으로 제주의 첫 버스에 하나둘 몸을 싣고 떠났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 그 버스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자기주도형 수학여행’의 첫 발걸음을 싣고 가는, 작은 교실이자 작은 배움의 배였다.

그렇게,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오래 품어왔고 SK선경최종건재단이 길을 열어 준 그 여행은 마침내 제주의 땅 위에서 첫 페이지를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펼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각자 코스로 흩어진 지 약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여기저기서 보고 문자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약속된 장소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다는 팀, 벌써 다음 코스로 이동 중이라는 팀, 버스 창밖 풍경을 찍어 보내오는 팀….위치추적 앱 속 작은 점들이 제주 지도 위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점들을 바라보며 ‘그래, 잘 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내쉰 뒤, 가장 많이 걸어야 하는 팀에게 조금이라도 걷는 시간을 줄여주고 싶었다. 제주 오름 코스까지 와야 하는 샤샤팀을 위해 버스에서 내릴 정류장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멀리서 오는 버스, 샤샤팀 아이들이 하나둘 내리는 모습을 봤을 때, 약속된 길을 스스로 찾아온 그 발걸음이 너무 대견해서, 아이들과 마주 선 순간 자연스럽게 하이 파이브가 터져 나왔다. “잘 왔다!” 짧은 그 한마디 속에 ‘너희 정말 해냈구나.’ ‘이제 시작인데, 벌써 부터 자랑스럽다.’ 라는 마음을 모두 담아 건넸다.
곧바로 호텔로 향했다. 이미 “저녁 6시까지 호텔 집합” 안내를 해 둔 터라,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할 식당까지 점검했다. 이제 남은 일은 아이들이 하나씩,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팀은 모세팀이었다.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 주며 “수고했다, 잘했다”는 마음을 그대로 전했다. 뒤이어 팀들이 차례로 들어왔고, 끝까지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호텔로 돌아왔다. 다만 카밀라 팀만 조금 늦었다. 중간에 버스를 반대로 타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한참을 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카밀라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실망이 묻어 있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준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다른 팀장들보다 한국어가 조금 서툰 것도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나는 카밀라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실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일은 오늘의 경험이 너에게 용기가 되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담대함이 될 거야.” 그렇게 어깨를 토닥여 주며 함께 식당으로 걸어갔다.
저녁 메뉴는 흑돼지 두루치기와 제주 전통 몸국. 젓가락은 쉴 틈이 없었고, 밥 위에 고기를 올려 먹으면서도 아이들은 또다시 웃고 떠들었다. 식당 안은 금세 제주의 이야기로 가득 찬 디너 토크 콘서트장이 되었다. 제주는 우리 아이들을 정말 다정하게 맞아 주고 있었다. 마치, “그래, 잘 왔다. 너희 참 대견하다.” 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자신감이 가득 찬 얼굴로 저녁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이 식사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첫째 날을 무사히 완주한 승리를 알리는 만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8시 우리는 세미나실에 다시 모였다. 오늘 하루, 각 팀이 걸어간 제주의 길들을 하나씩 나누고, 서로의 코스와 선택을 칭찬해 주며, 무엇을 느꼈는지 짧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자기 안의 빛을 조금씩 발견해 가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제주의 미션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조현수 목사님(김포 구원의감격교회)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고, 아이들은 눈을 감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이 여행이 단순한 수학여행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마음속에 ‘나는 빛나는 존재’라는 고백을 심어 주는 작은 예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제주의 첫째 날 밤은 조용히, 그러나 말할 수 없이 벅찬 마음을 안은 채 천천히 깊어가고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