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순천사랑어린배움터에서 택배를 보내왔는데, 그 속에 쌀 한 봉지와 손으로 쓴 편지 두 통이 들어 있었다.
지난번에는 지리산 실상사 농장 이름으로 쌀 10kg을 보내왔는데, 실상사 농장에서는 해마다 쌀뿐만 아니라 농장에서 거둔 결실 가운데 나눌 만한 것이 있으면 보내주곤 한다. 그래서 엊그제 실상사에 들렀을 때 회주스님께, 덕분에 배 굶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게 되었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도법스님께서 그 인사는 실상사 농장지기에게 하라고 하셨다.
사실 쌀 10kg이면 우리 내외 두 사람의 겨울 양식으로 충분하다. 하루에 한 끼만 밥을 지어 먹고, 나머지 두 끼는 채소나 과일, 집에서 콩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요구르트 등으로 해결하는 데다가 밖으로 나도는 날도 제법 되니 그 정도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아랫배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인데,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면 집에서 꼼짝도 않고 있으니 그런 모양이다. 내 몸이 게을러서 그런 것을 나라고 어찌하겠는가.
순천사랑어린배움터(학교)는 초·중등 과정을 함께하는 기숙형 학교이다. 2003년 개교했으니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이 학교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 나름으로 마음을 보내왔다. 이 학교는 관옥 사형께서 마음을 모으고, 사형을 모시는 일부님이 중심이 되어 꾸려왔을 뿐 아니라, 나 또한 막내를 우리나라 첫 대안학교의 첫 입학생으로 보낸 바가 있고, ‘첫 대안대학’이라 할 녹색대학을 함께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소개되어 있는 배움터의 특징에 대한 글의 일부이다.
“사랑어린학교는 명상과 마음공부가 교육 활동의 중심이며, 외면적으로는 마을 교육공동체와의 결합을 중요시한다. 마을공동체 교육으로 매일 아침 와온 바닷가에서부터 학교로 걸어오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각 마을 주민들의 삶을 체험한다. 또한 마을잔치에 참여해 경로당의 노인들에게 인사하는 등의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특색교육으로는 ‘순례활동’이 있다. 순례는 ‘해외순례’와 ‘국내순례’를 매년 번갈아 가며 40일 이상 시행하는데, 해외순례는 주로 산티아고를, 국내순례는 ‘세월호 길내기’, ‘5·18 민주화운동’, ‘동학농민혁명’ 등 역사 유적을 순례한다. 또한 학교 안의 밭과 학교 밖의 논을 학생들이 직접 경영하며 자신들의 먹거리를 마련하는 생태체험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번에 보내온 쌀은 소개에 나와 있듯 생태체험 과정으로 지은 쌀농사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해에도 보내주었는데, 감사의 글을 나누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학생들이 보내온 두 통의 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편지들을 읽으며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몇 단어가 가슴 깊이 다가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천지인’이라는 표현과 ‘기계께서’라는 높임말이었다. 특히 큰 기계를 어른을 대하듯 높임말로 표현하는 대목에서, 내게는 어린아이의 마음씀이 경물(敬物)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와 도구를 공경하는 마음을 지닌 이들이 어찌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새 세상이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넘어 사물여천(事物如天), 천지 만물을 모두 하늘로 섬기는 그런 마음자리에서만 열릴 것이라 싶다. 아침에 이 편지들을 읽으며, 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어 여기에도 옮긴다.
아이들의 이름으로 보내온 쌀은 밥만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함께 건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도 우리의 쌀을 드시고 웃으시면 좋겠습니다.”
쌀 편지 1/
안녕하세요.
이번에 쌀 편지를 쓰게 된 6학년 박민혁입니다. 이번 벼베기 기간에는 큰 일이 있었습니다. 벼베기 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논밭이 진흙밭이 되어 사람이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벼베기는 기계가 해주었습니다. 사람 40명이 해도 3~4시간이 걸리는 일을 기계로 하니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한순간에 벼들이 없어지니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벨 때는 떨어진 쌀이 많지 않았는데, 기계로 하니 정말 많이 떨어졌습니다. 비록 저희가 벼를 베지는 못했지만, 다 함께 모내기를 했고 천지인과 어른들께서 피를 뽑으셨습니다. 마지막은 기계가 하긴 했지만, 저희가 정성껏 키운 쌀입니다.
맛있게 드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쌀 편지 2/
안녕하세요?
사랑어린배움터 4학년 유마음입니다. 올해 모내기 때는 많이 추워서 힘들었어요. 정성을 담아 심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언니, 오빠들이 가서 풀도 뽑아 주어서 잘 자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벼베기 며칠 전부터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벼를 벨 때는 우리의 정성이 담긴 손 대신 기계께서 베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편하게 새참도 먹고 학교에서 놀았습니다.
우리 배움터의 논에서 자란 쌀들을 소중히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들의 정성과 당신들의 정성이 합쳐지면 쌀이 더 맛있어지겠지요?
제가 직접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편지로 당신들에게 우리의 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당신들도 우리의 쌀을 드시고 웃으시면 좋겠습니다.
제 편지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5년 11월 12일
사랑어린배움터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