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미디어칼럼

진리는 변호 필요 없어…군중의 동의보다 혼자라도 진리편에 서는 게 ‘능력’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행 24:1)

이 상황에서 정작 변호사가 필요한 사람은 아나니아가 아니라 바울이었습니다. 종교 권력의 상징인 대제사장, 그 권력을 변호하는 한 변호사, 그리고 정치 권력의 상징인 벨릭스, 이 세 사람 앞에 홀로 서 있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바울은 그 어떤 변변한 도움도 없이 그저 혼자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홀로 세상 전체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나니아는 바울 한 사람을 상대하는 데 가능한 최대한의 힘을 동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 안에 세상 전체를 상대로 넉넉히 이길 만한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는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려다가 바울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를 거꾸로 증명하고 만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힘일까요? 진리가 힘입니다. 진실이 능력입니다. 진리는 변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증언이 필요할 뿐입니다. 꾸밀 필요도 없고 포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변호가 필요한 진리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닙니다.

아나니아는 장로들의 세력과 변호사를 자신의 곁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진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진리 편에 있었기에 꾸미거나 포장하거나 변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침이 없습니다. 그런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진술합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 24:16)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사는 것, 그것이 바울의 힘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지지하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무수한 군중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보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혼자라도 진리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 곁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양심이라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이 양심이 고장 나 있는 경우입니다. 욕심 때문에 무뎌지고, 허영심에 오염되다가 고장이 나 버릴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이 고장난 우리의 양심을 끊임 없이 찌릅니다. 심장제세동기(AED)가 강력한 전기 충격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것처럼, 때로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진리의 편에 세우기 위해서. 그것이 거대한 세상 앞에서도 담담하고 잠잠할 수 있는 힘입니다.

https://youtu.be/pOUlh5ptk7A?si=e14jEyz9nS0WSuqp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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