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섭 칼럼] 다윗의 프로필 사진…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시편 3, 표제어)
시편 1편과 2편에는 표제어가 없습니다. 이 두 시편은 시편 전체의 서문과도 같습니다. 제목이 붙은 첫 번째 시편은 3편입니다. 시편을 펼친 독자가 가장 처음으로 마주하는 제목은 3편의 제목입니다. 신문으로 치면 1면 톱입니다. 그 헤드라인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었을 하루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의 삶에서 한 장면을 골라 시편 맨 앞에 건다면, 고를 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날,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던 날, 법궤가 입성하던 날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에는 다윗이 지은 주옥같은 노래가 정말 많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편 23편이 첫 자리에 왔어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시편은 다윗이 아들에게 쫓겨 도망가던 장면을 첫 번째 제목으로 내겁니다.
그날 다윗은 성전과 왕궁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맨발로, 머리를 가린 채 울면서 감람산을 넘었습니다. 시므이라는 자가 길가에서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인생에서 오려내고 싶은 한 자락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SNS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합니다. 삶의 무한한 장면들 중에 잘 나온 장면만 골라 프로필에 겁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맨 앞에 두고 흑역사는 깊이 묻어 두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입니다.
시편의 편집자들은 왜 가장 위대한 왕의 치명적인 오점을 시편의 첫 페이지에 떡 하니 걸어두었을까요? 그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곳입니다. 시편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위대한 다윗이 아니었습니다. 시편은 첫 페이지부터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시작점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시 3:3)
왕의 영광이 증발한 자리에서 다윗은 자신의 진짜 영광이 무엇이었는지 봤습니다. 왕관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빼앗길 수 있는 것은 처음부터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고개를 들 수 없어 머리를 가리고 산을 넘던 사람의 그 숙인 고개를 하나님이 드셨습니다.
보기 좋은 장면만 골라 인생을 꾸미는 동안,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편집하다 보면 그 자리에 채워진 은혜까지 함께 잘려 나갑니다. 흑역사를 오려내는 가위가 은혜를 도려내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먼저 지우고 싶은 그 한 줄에 하나님이 적어 두신 은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