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0일, 영원한 재야라고 일컬어지던 우상(牛墒) 장기표 선생 1주기 추도 행사가 선생의 유택이 모셔진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에서 있었다. 전날까지 비 오고 궂었던 날씨가 다행히 개는 가운데 유가족들과 지인들과 선생을 흠모하는 분들이 예상보다 많이 오시어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어쩌면 선생은 당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가 사후에 더욱 새롭게 조명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번 1주기 때 선생의 추모문집을 간행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형수님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여 미루게 되었다. 선생의 평전은 따로 쓰고 있는 작가가 있어 기다리면 될 것 같다고 한다.
선생이 떠난 지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이 나라의 정치 현실은 참으로 경천동지할 정도로 바뀌었다. 선생이 생전에 우려했던 일들이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엄혹한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선생을 추모하면서 참석한 이들이 하나같이 깊게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선생 떠난 지난 1년 동안 미망에 사로잡힌 무지한 자가 국가 권력을 잘못 행사했을 때, 나라가 어떻게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리고 그런 전임 정권의 자폭으로 새롭게 집권에 성공한 인물과 그 집단들이 마치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피땀으로 쌓아온 이 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반을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지를 가슴 졸이며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 이런 국면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생각이었다.
우상 장기표 선생, 그는 이번 생에서 내가 만났던 이들 가운데 가장 자신에게 엄격했고, 대의를 위해 온전히 자신을 던졌던 우리 시대의 마지막 지사였다. 동시에 생명과 사랑의 정치, 자아실현의 정치를 역설한 뜨겁고도 여린 혼의 소유자였다.

선생은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 앞에서는 강철처럼 굳건했지만, 이 땅의 민중들과 함께할 때는 더없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선생이 마지막까지 전력으로 추구했던 특권폐지운동 또한 그 때문이었으리라 싶다. 내가 선생을 우리 시대의 양심이자 참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선생을 이른바 운동판의 동지로, 선배이자 형으로 함께해오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선생이 사적 이해관계로 주저하거나 타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선생이 비록 정치권에 몸담았지만, 내가 선생을 정치인이 아니라 수행자라고 일컬었던 것도 이런 까닭이다. 선생은 정치판을 정치운동의 장으로 삼은 영원한 운동가였다. 세상에서 선생을 영원한 재야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일급수의 맑고 청정한 물에서나 살아갈 수 있는 물고기가 시궁창 같은 혼탁한 정치판에 뛰어들어, 부끄러움조차 잊은 양아치 같은 무리들 틈에서 그 물을 맑게 정화시키겠다고 작정한 것은 애초부터 무망한 일이었다. 선생이 말기암으로 홀연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그 때문이었으리라 싶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선생의 팔순 여행을 함께하며 이제부터는 그런 미망에서 벗어나 ‘수행자 우상(牛墒)’으로 남은 날을 사시라고 강권했던 것도, 그런 정치판을 바꾸려 하다가는 끝내 제명대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 이 시대, 이 나라의 가장 큰 불행은 우리 사회에 이른바 양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재야와 깨어 있는 지성인 그룹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모두 권력의 위세 앞에 숨죽이고 있거나, 진영이라는 망령에 휩쓸려 확증 편향의 내로남불식 언사를 부끄러움 없이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전횡을 지적하고 제지할 세력이 없다는 것은 나라가 망국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전횡과 독주가 어떻게 나라를 나락으로 내몰았는지는 지난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미 이 정권에서도 파시즘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견제받지 않은 정권과 거대 여당은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언론까지 사실상 장악한 데다가 이제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까지 저들의 의도대로 바꾸려는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라의 명운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더 안주해온 우매하고 무능한 야당은 여전히 자중지란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현실적으로 집권 여당의 일방적 폭주를 견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세력과 수단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일방적 폭주는 결국 필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재야와 양식적인 지식인들이 반민주, 반인권적인 폭주를 막고 국가 권력의 건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앞서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나라와 국민들도 다시 새롭게 일어날 수 있고, 그래야 이 정권도 성공한 정권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이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고, 시대 정신이 사라진 암울함 속에서 그 어둠을 밝혀줄 등불마저 보이지 않는데, 세계 도처에서 망나니들의 미친 칼춤만 난무하고 있다. 누가 나서서 다시 등불을 밝히고 사람과 뭇 생명이 더불어 함께 사는 호혜 상생의 세상, 그런 새로운 문명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선생의 1주기에 새삼 시대의 등불이었던 선생을 그리워하고 떠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선생이 남기신 뜻은 지금 우리에게 그 길로 오롯하게 한마음으로 나서라는 것이리라 싶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깨어 있는 양심으로 이 나라와 세상을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라는 당부이리라.
오늘 1주기를 맞이하여 동지였고 선배이자 자상한 형이었던 선생의 유택 앞에서 남기신 그 뜻을 다시 새긴다. 이 땅, 이 나라, 이 세상에 생명과 사랑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각자도생의 공멸의 길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의 행복을 통해 우애와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롭게 마음을 보태야겠다고.
이 땅의 영원한 재야 우상 장기표 선생이여,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형이여,
당신의 그 뜨거운 혼이 여기에 남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 길이 살아 숨쉬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