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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알리 살레하바디 이란 세타레 소브 편집장] 지금 이 시대는 과거의 그 어떠한 시대와 비교해도 매우 이질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그 대답은 두 단어로 축약될 수 있다. ‘거버넌스(통치)의 문제’다.지금 이란이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은 현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정부들의 실태가 빚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 상황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상주의와 감정에 사로잡힌 이란은 구호에 의존하는 구시대적인 통치와 호전적인 외교를 이어왔다. 이란의 헤게모니 또한 국가 개발이 아닌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기원전 500년 전 중국의 병법가 손자가 저술한 ‘손자병법’은 미군의 필독서 중 하나로 꼽힌다. 손자는 그 스스로가 군인이었으나, 군이 정치나 경제에 개입할 경우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천년 후에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때문에 지난 6월 ’12일의 전쟁’ 동안 이란의 ‘눈과 귀’가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의 국회의장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손자는 외교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적과 백 번 싸워도 아무 의미 없다. 진짜 승리는 적을 길들이는 것이다” 국가경영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쟁이나 제재보다 상대를 길들여 평화를 이루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대립 대신 평화 택한 국가들이 일궈낸 번영의 교훈
중국의 장쩌민 전 주석은 베이징 주재 이란 대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란은 미국이란 뿔과 싸우고 있고, 우리는 미국이란 젖을 짜고 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나?” 일본도 이란에 이런 말을 남겼다. “미국이 일본을 핵무기로 폭격했을 때, 우리는 전쟁으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제조업을 일으켜 미국을 정복했다.”
중국 공산당은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유연한 외교를 지향해 왔다. 때로는 타협하고 전쟁 국면을 피해가면서 말이다. 2000년 당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에 불과했다. 이란의 당시 국민소득보다도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000달러까지 상승했으며, 7억명의 빈곤층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이 미국과 대립했다면 이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란혁명이 발발하기 불과 1년 전인 1978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시나이 반도를 수복했다.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나라와 어떻게 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집트는 미국의 51번째 주인 이스라엘과 싸워 이길 수 없다.”
위 사례들의 교훈은 무엇일까? 미국과의 대립이 아닌 평화를 택한 국가들은 결국 번영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텅 빈 구호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입지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으며, 국민의 삶도 피폐해져 가고 있다.
‘죽음’을 외치는 상대방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정말로 협상에 나설 의지가 있다면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바에는 협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이 맞다.
이란은 가장 최근에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기에 앞서 “이란은 협상하든지 폭격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지도자들은 협상을 통해 우라늄 농축을 잠시라도 멈췄다면 전쟁과 제재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미국과의 합의가 이뤄졌다면 이란은 포르도우, 나탄즈, 이스파한 등지의 핵시설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며, 후대에 핵 산업 개발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시아엔 영어판: A Reality That Was Not Understood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