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다지만 북위 42도-43도에 위치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사정이 다르다. 겨울철 영하 30도의 추위에 12월 초부터 2월 까지는 결빙되어 항구기능이 정지되어 있다.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 쇄빙선을 이용해서 바다를 열어야 한다. 바다얼음의 정도가 두께 50Cm-1m로 해상 수 Km에 걸쳐 얼어있다. 러시안들은 자동차를 몰고 앞 바다 아무르만으로 나가 해상빙판을 달리는 게 겨울 취미라고 하니 그 정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폭설과 극한의 추위에 갇혀 러시아인들의 겨울철 취미는 단순하다. 모스크바의 소수 상류층은 발레를 감상하고 프랑스 와인을 마시며, 성대한 음악회를 찾아다닌다. 대다수 서민층은 집에 틀어박혀 독주 보트카를 마시고 열이 오른 페치카에 둘러앉아 푸시킨의 시와 톨스토이의 소설을 낭독하는 게 취미였었다.
겨울에도 항해가 가능한 부동항에 대한 염원, 그것은 러시아 역사에서 전통적 남하정책의 근간이었다. 16C부터 집요하게 추진된 남하정책은 유럽에서는 따듯한 흑해 크림반도를 점령하였고, 극동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동진하는데 성공했다. 소비에트연방이 1991년 해체되면서 위성국들을 독립시켰지만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는 대체 불가능한 포기불가능한 땅이었다. 아침에 먹은 사과도 흑해연안의 소치에서 생산된 사과라 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도 국가의 명운이 달린 전쟁으로 절대 양보할 수가 없는 전쟁이라 한다. 서유럽국가대 러시아의 전쟁으로 장기전을 대비하는 양상임을 현지의 표정에서 알 수가 있다.
러시아의 전쟁과 정복역사는 냉혹하지만 내연하며 진행 중이다.

연해주 해안에는 블라디보스토크, 포시예트, 나홋카 등 3대 중요 항구가 위치한다.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지정학적 국방상의 요충으로 최근까지 외국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단기간의 관찰로 봐도 블라디보스토크 항은 지형상 좁은 수로 양쪽에 언덕과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우리나라 남해안 통영항의 확대판 같은 느낌이 들며 확장에 한계가 있는 듯하다. 일찍이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기항으로 사용되어 군항과 민간항이 혼재되어 있는 것도 러시아로 봐서는 국방상 취약요인일 것이다.

두만강에 가까운 남쪽 포시예트는 19세기 말 고려인들이 집단 거주하며 개발된 역사 깊은 항구였다. 고려인들로 인해 발전한 항만 포시예트는 역사적인 의미는 있으나 산업과 인프라도 부족하며 국경에 근접해 있어 발전에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나홋카는 역사는 일천하지만 최근 극동경제 개발의 중심 항만이 되었다. 광활한 해안에 선박 출입항이 원활하며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유럽과 연결되어 있다. 팽창하는 중국경제의 동북 축인 동북삼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의 동해안 접근을 가능케 하며, 북극항로의 시발점으로 지경학(지리경제학)적 핵심 거점이다.

오늘 일정은 나홋카항을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의 숙소인 파티잔스크에서 약 38Km,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163Km 동쪽으로 떨어진 항구였다. 문제의 라다 화물차를 타고 구글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이동했다. 8년 전 실크로드 답사와 비교해 볼 때 구글맵의 정확도가 개선되었고, 인공지능(AI)이 복잡한 통역 일을 일부나마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게 커다란 변화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인터넷 연결은 이런 것 조차 불가할 정도로 열악했다.
대륙에는 아침부터 차가운 비가 뿌렸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나홋카 항구 언덕은 세찬 바람에 스며드는 한기가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북유럽을 여행해 본 경험자라면 이런 유형의 추위를 알 것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방한대책으로 경량패딩은 여행자의 필수품이다.

러시아 정교의 돔식 타워형으로 된 전망대는 마침 수리 중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항구는 천혜의 해안을 배경으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러시아의 새로운 야망 동방 경제의 물류 중추가 되려는 웅대한 야망을 펼쳐내기에 넉넉한 공간과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국의 동북삼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 물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의 경제대국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정상적 운영이 요원한데, 전쟁과 코로나 등으로 국제적인 제제와 경제적 한계에 부딪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극동개발의 요체는 시베리아 천연가스와 석유를 일본과 한국에 팔고, 두나라의 물류를 받아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신속히 값싸게 유럽으로 수송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 비우호국가로 지정된 한국에 해상수송로인 동해시- 블라디보스토크 페리를 존속시키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닌가? 국가 간의 관계는 도덕과 인권의 단순한 잣대로 재기 어려운 복합적 상황이 항상 깃들여져 있다.
다시 확인한 사실이지만 러시아는 연해주 앞 바다를 동해라 부르지 않고 일본해(야폰스코예 모례)라 부르고 있었다. 트럼프가 멕시코만을 미국만이라고 부른다고 갑자기 세계지도가 바뀌는것은 아니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 실체의 접근에는 객관적 시각과 지속적인 설득이 요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