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방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확대하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게 요구해온 방위비 기준을 이제 아시아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주요 동맹국들의 국방비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션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6월 19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5월 31일 샹그릴라 대화와 6월 18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말했듯이, 유럽 동맹들이 아시아 동맹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세웠다”며 “그 기준은 GDP의 5%를 국방에 지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파넬 대변인은 이어 “중국의 군비 증강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고려할 때, 아태 지역 동맹국들이 유럽 수준에 발맞춰 방위비를 늘리는 것은 합리적”이라며 “이는 아시아 동맹국들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며, 미국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보다 공정한 동맹 분담”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미국이 향후 트럼프 행정부 또는 그와 유사한 노선의 정권을 통해 한국에 국방비의 대폭 증액을 요구할 명분을 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요구가 자칫 내정간섭의 성격을 띨 수 있다는 점이다. 국방 예산은 하루아침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중장기 계획과 국가 전체 예산의 조정 속에서 편성되는 만큼, 외부 압력에 의해 국방비가 급격히 증액될 경우 교육, 복지, 과학기술 등 다른 부문의 예산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정책 혼선과 사회적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국방비는 약 66조 원으로 GDP의 2.8% 수준이다. 만일 미국의 요구대로 5%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국방비는 100조 원을 넘어서게 되며, 약 30조 원 이상의 재원이 타 부처 예산에서 차출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며, 역사적 맥락 속에 뿌리내려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군이 한국에 점령군으로 주둔하고 있다”는 표현은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언급했다가 논란을 빚은 바 있지만, 이는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1945년 9월 7일,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미 태평양 육군 최고사령관은 “우리 승전군은 오늘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땅을 점령한다(occupy)”는 내용의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그 다음날 존 하지 중장의 미 육군 24군단은 인천에 상륙했고, 9일에는 서울에 입성해 군정을 선포했다. 이후 제7보병사단장 아치볼드 아널드 소장이 초대 군정장관으로 취임하면서, 38선 이남은 ‘사실상’ 미군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된다.
이후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군은 다시 한반도에 주둔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국의 시각 속에는 여전히 ‘점령군’의 관성이 남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1966년 체결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은 이러한 권력구조의 위계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는 그들이 지닌 안보 전략의 일환이자, 동맹 관계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구조적 인식의 반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자조적인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