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기사문화

강릉 향하는 ‘길’, 대관령 넘으며 만나는 시간의 ‘결’

대관령 환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길은 어디일까. 누군가는 문경새재를, 또 다른 이는 죽령이나 구룡령을 떠올리겠지만, 많은 이들이 평창과 강릉을 잇는 대관령 옛길을 으뜸으로 꼽는다.

대관령 옛길은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된다.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병풍처럼 감싼 길을 따라 구불구불 걸어가면 국사서낭당에 이른다. 겨울 정취 가득한 이 길은 마음을 비우고 걷기에 더없이 좋다.

국사서낭당은 강릉단오제의 시작점이다.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5년 등재)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축제 가운데 하나다. 마을 수호신인 대관령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이 지금도 살아 있다.

강릉단오제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남효온의 『추강냉화』와 허균의 『성소부부고』 등에서 그 유래를 엿볼 수 있다. 특히 1603년(선조 36년) 허균이 강릉단오제를 직접 보았다는 기록은 축제의 오랜 전통을 증명한다.

전설에 따르면 대관령의 국사성황신은 신라 김유신 장군으로, 단오제의 주신(主神)은 범일국사, 그리고 강릉의 여신은 정씨 처녀로 전해진다. 정씨 처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뒤 대관령 국사서낭당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강릉단오제의 신성함을 상징한다.

대관령

대관령의 고갯마루에 오르면 조릿대 사이로 난 오솔길이 이어지고, 능선 너머로는 강릉 시가지와 동해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역 사람들은 “동대문 밖이 강릉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강릉은 관동 팔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고장이다.

조선시대 문장가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강릉을 “신라 때 북빈경北濱京이자 동경東京이라 불렸고, 산천이 아름다워 떠나는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이는 강릉이 단순한 지방 도시를 넘어 문화와 문필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대관령은 해발 832m, 길이 약 13km, 99굽이를 가진 험한 고개다. 현재는 영동고속도로가 대관령터널을 통해 관통하지만, 예전엔 말이나 나귀로 넘던 길이었다. 조선시대 고형산(1453~1528) 강원도 관찰사가 백성의 노동력을 동원하지 않고 직접 개척한 고개로 전해진다.

그의 일화는 박동량의 『기재잡기』에도 전해진다. 하루는 고형산이 지인을 전송하려 모화관 밖에 장막과 술을 차려놓았으나, 정작 지인이 나타나지 않자 “시험 삼아 한 잔” 하며 세 동이의 술을 모두 비웠다는 이야기다. 유쾌하면서도 당대 관료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다.

대관령은 시인들의 발길도 끌었다. 김시습은 “대관령에 구름이 걷히니 꼭대기엔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며 고갯길의 풍경을 시로 노래했다. 신사임당은 “늙으신 어머님을 임영에 두고 / 이 몸 홀로 서울로 가네”라며 대관령을 넘는 이별의 정서를 담았다.

대관령 주막에 도착하면 걷기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위안이 있다. 주모는 없지만, 마음속에 불러낸 주모와 동동주를 나누듯, 함께 걷는 이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곧 이 길의 또 다른 선물이 된다.

대관령

신정일

문화사학자, '신택리지' 저자, (사)우리땅걷기 이사장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