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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제국의 초상, 닝샤’…흉터 위에 피어난 오늘의 중국

<제국의 초상, 닝샤> 표지

<제국의 초상, 닝샤-부제: 중국 닝샤 회족자치구이야기>(서고, 2018)는 서명수 칼럼니스트 겸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전 매일신문 기자)의 ‘중국 대장정’ 시리즈 가운데 네 번째 책으로, 중국 서북부의 닝샤회족자치구를 중심으로 사라진 제국 서하와 오늘날 회족의 삶을 탐사한 기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나 지역 안내서가 아니라, 제국의 흥망과 그 잔재 속에 살아가는 민족의 정체성을 문명사적 시야에서 들여다본 르포르타주이자 역사·문화 보고서다.

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서명수는 한국 언론계에서 드물게 아시아 내부, 그중에서도 중앙아시아와 서부 중국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취재해온 현장형 기자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 변방을 탐사하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어떻게 내부의 다양성과 모순을 품고 있는지를 언론인의 눈으로 기록해왔다.

산시, 석탄국수

<제국의 초상 낭샤>는 <다시 중국을 만나다 : 중국대장정>시리즈의 하나로 <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 <산시 석탄국수> <후난 마오로드>에 이은 네번째 중국탐사로. 닝샤라는 우리는 물론 중국인에게도 다소 생소한 지역을 매개로 서하제국과 회족이라는 민족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면서 현장성 강한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후난, 마오로드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서하(西夏)라는 제국의 흔적을 좇는다. 서하는 11세기 초반부터 13세기 초반까지 오늘날 닝샤 지역에 존재했던 탕구트족의 제국으로, 당시 송나라·요나라·금나라·몽골 제국과 긴장과 균형을 이루며 190년 존속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침공으로 완전히 소멸되었고, 한때 존재했던 문명은 거의 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저자는 서하의 수도 흥경, 난창탄춘 같은 폐허를 찾아 직접 현장을 밟고, 서하가 ‘동방의 비잔틴’이라 불릴 만큼 화려했던 문명을 어떻게 꽃피웠고,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를 풍부한 역사적 자료와 현장 스케치를 통해 재구성한다.

제2부 칭기스칸 미스터리에 이은 제3부 회족(回族) 제국은 이들의 역사와 정체성에 주목한다. 회족은 중국 내 무슬림 집단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민족으로, 몽골제국과의 접촉,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 이슬람의 확산 속에서 다층적으로 형성되었다. 여기선 회족의 기원과 종교, 문화, 성씨 체계까지 다양한 생활양식을 소개하면서, 중국이 소수민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통합하거나 배제해왔는지를 날카롭게 짚는다.

제4부 ‘아름다운 닝샤’에선 지역이 지닌 지정학적·생태적·문화적 복합성을 조망한다. 저자는 닝샤가 단순한 ‘소수민족 자치구’가 아니라, 중국 내 민족·종교·환경 문제가 교차하는 접점임을 강조한다.

서명수 기자의 강점은 단지 자료의 축적이나 통계의 나열이 아니라, 그 땅에 직접 발을 디딘 이의 언어로 현장을 서술한다는 데 있다. 난창탄춘의 바람결, 흥경 폐허의 먼지, 회족 노인의 눈빛 등을 묘사하는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그 풍경을 직접 마주한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언론인으로서의 문제의식 즉 중국의 통합주의적 민족정책, 제국의 기억을 지우는 국가 서사, 소수자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 등을 놓치지 않고 서술한다. 이같은 서명수 저자의 문제의식은 <충칭의 붉은 봄>(2021년), <중국 부역자들>(2024년) 같은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후속작을 예고하고 있다.

<제국의 초상, 닝샤>는 제국의 중심이 아닌 변방, 통치자가 아닌 피지배자, 기록이 아닌 침묵에 주목한다. 서명수의 ‘중국 대장정’ 시리즈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앞으로 이어질 다음 여정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중국의 이면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단순한 여행서가 아닌 하나의 문명 탐사서로 읽힐 것이다.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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