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황건의 해부학 산책] 오래된 부고 앞에서…논문으로 살아남은 해부학자

휘트널(Samuel Ernest Whitnall)

그제 해부학회에서 동료 한승호 교수의 특강을 들었다. 의사 출신 해부학자인 그는 응용해부학(applied anatomy)을 연구한다. 강의 중 그는 자신이 처음 사용한 줄 알았던 용어가 이미 19세기 러시아의 해부학자 니콜라이 피로고프(Nikolay Pirogov, 1810~1881)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의 시구를 인용했다.

“A little learning is a dangerous thing.”

조금 배운 지식은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해부학의 역사를 떠올렸다.

사람의 몸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해부학이 발달하면서 학자들은 새로운 구조를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 자신이 발견한 구조에 자기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기존에 알려진 구조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한 구조물에 여러 명칭이 혼용되었고, 해부학자끼리도 서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 해부학 용어의 국제적 표준화와 《Terminologia Anatomica》의 발간 및 개정은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수술해부학이 발전하면서 수술 중 관찰한 구조를 새로운 발견으로 발표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수술 현장에서 얻은 관찰은 임상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새로운 구조인지, 과거의 해부학자들이 이미 기술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 먼저다.

내가 성형외과 수련을 시작한 1987년 무렵, 얼굴당김술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SMAS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1976년 프랑스의 미츠(Mitz)와 페이로니(Peyronie)가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 논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들이 SMAS라고 부른 것은 뺨과 이하선 부위의 얕은근막(superficial fascia)이었다. 그보다 앞서 토드 스쿠그(Tord Skoog)는 얕은근막을 이용한 얼굴당김술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 그 경험을 기록했지만, 별도의 논문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나는 널리 사용되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기존 해부학 문헌을 찾아보면 이미 알려진 구조를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검토한 결과를 동료와 함께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윗눈꺼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해부학자 김대중 교수와 함께 윗눈꺼풀의 시상절편을 만들고 구조를 관찰했다. 우리의 관찰을 뒷받침할 선행 문헌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논문 PDF 파일을 쉽게 구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주한영국문화원 도서실에 휘트널(Samuel Ernest Whitnall)의 1932년 저서를 신청했다. 약 2주가 지나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서실에 가서 책을 받아 한 달 동안 빌려 읽었고, 필요한 부분을 복사했다. 관련 논문도 찾아 신청했다. 훗날에는 영국의 고서점에서 그 책의 원본을 구입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휘트널(Samuel Ernest Whitnall)의 1932년 저서

이러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1998년 《British Journal of Plastic Surgery》에 윗눈꺼풀의 눈확사이막과 윗눈꺼풀올림근건막의 접합부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사체 해부와 조직학적 관찰을 통해 구조를 분석하고, 휘트널이 기술한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그에게서 배운 지식을 내 관찰과 대조하면서 오래전의 기록이 현재의 연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여러 해가 흐른 뒤, 영국해부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브리스톨대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대학 도서관을 찾아갔다. 휘트널은 옥스퍼드에서 해부학 실습을 담당하다가 호주에서 교수로 근무했고, 말년에는 브리스톨에서 가르쳤다. 그가 일했던 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오래된 도서관의 사서는 팔에 토시를 끼고 일하고 있었다. 아카이브를 열람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었다. 휘트널에 관한 자료나 유품이 있는지 물었다. 사서는 신문에서 오려 보관한 자료를 가져왔다. 책장을 넘길 때 사용하는 장갑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도록 받쳐 두는 구슬도 함께 있었다.

내가 마주한 것은 길지 않은 부고였다.

한국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이름이지만, 그가 근무했던 대학에 남아 있는 흔적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영국처럼 오랜 학문적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도 한 학자가 남긴 자취가 반드시 크고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한곳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았다면 더욱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고 앞에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명판결을 남긴 판사가 판결문으로 기억되듯이, 학자도 자신의 논문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그가 남긴 논문을 후대의 연구자가 읽고 인용하고, 자신의 관찰과 비교하는 한 그의 지식은 살아 있다. 연구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논문은 다른 연구자의 손에서 다시 읽힌다.

나는 그 낡은 신문 부고를 보며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훌륭한 논문을 남겨 주어서 고맙다고.

사마천은 《사기》의 「백이열전」에서 공자가 백이와 숙제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후세에 어떻게 알려질 수 있었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태사공자서」에서는 자신의 저술을 명산에 보관하고 부본을 도성에 두어 후세를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록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 지식과 기억을 전하는 수단이다.

해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구조를 발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발견된 구조를 기억하고, 먼저 관찰하고 기록한 사람의 이름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 전에 과거의 기록을 살피는 것은 학문적 진보를 방해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진정으로 새로운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포프의 말은 조금 배운 사람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위험을 경계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깊이 배운다는 것은 지식을 더 많이 쌓는 것만이 아니라 그 지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브리스톨의 오래된 도서관에서 내가 만난 것은 짧은 부고 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내가 읽고 인용했던 논문이 있었고, 내가 관찰한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한 해부학자의 시간이 있었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훌륭한 논문을 남겨 주어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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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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