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윤복 ‘미인도’ 앞에서 작업을 생각하다

미인도 앞에선 필자

대구 간송미술관에는 ‘미인도실’, 곧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방’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처럼 어두운 공간에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마주할 수 있다. 관람객의 얼굴조차 자세히 보이지 않는 방인데, 그림 속 여인은 환하게 살아 있었다.

셀카를 찍으려고 팔을 뻗었더니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인이 다가와 물었다.

미인도

“사진 찍어 드릴까요?”

얼른 휴대전화를 건넸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사진이 실루엣처럼 꽤 잘 나왔다. 나도 그 여인이 그림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찍고 싶어 허락을 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내 사진을 찍어 주셨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사진까지 허락해 주실 필요는 없었다. 혼자서 답례 방법을 정해 놓은 셈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 주신 분에게 나는 꼭 한마디 했다.

“눈썹 가느다란 것 보셔요.”

사진을 부탁한 사람이 사진을 찍어 준 사람에게 감상까지 권한 것이다. 직업병이었을까. 나는 조선시대 미인도와 일본 에도시대 미인도, 현대 한국 미인대회 수상자들의 얼굴을 계측해 논문을 썼다. 쌍꺼풀과 눈꺼풀의 형태를 분석했고, 불화 속 부처의 얼굴도 미인도의 얼굴과 비교했다. 그런데 정작 《미인도》 앞에서는 측정값보다 가느다란 눈썹이 마음에 남았다.

미당 서정주의 「동천」이 떠올랐다.

‘내 마음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

그림 속 여인이 어떤 신분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흔히 기생으로 설명하지만, 내 눈에는 그보다 젊고 앳된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논문에서는 눈썹의 길이와 기울기를 잴 수 있어도, 그 눈썹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까지 계측할 수는 없었다.

젊었을 때는 갸름한 얼굴과 쌍꺼풀이 뚜렷한 서양식 미인이 좋아 보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살아온 시간이 배어 있는 동양 여성의 얼굴에도 눈길이 갔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 나오는 구절처럼.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젊음의 아름다움과 세월이 빚은 아름다움은 다르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날 나는 《미인도》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얼굴을 연구해 온 의사도 그림 속 여인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저 감탄하는 관람객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어땠을까. 미당의 시를 빌려 그림 속 여인에게 작업이라도 걸어 보았을까.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인은 그림 속에 있었고, 나는 그림 앞에 있었다. 사진을 찍어 준 여인은 사진 속에 없었고, 나는 어둠 속 실루엣으로 남았다. 정작 찍고 싶었던 뒷모습은 얻지 못했지만, 대신 이야깃거리를 얻었다.

아무래도 논문을 한 편 더 써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눈썹의 길이나 눈의 기울기가 아니라, 아름다움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측정해 보는 것이다.

아직 나는 열정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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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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