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눈물의 해부생리학…”눈물에도 ‘적응증’이 있는가”

눈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판정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의사인 나는 문득 생각한다. 눈물에도 적응증이 있는가. 슬픔에도 때가 있고, 눈물에도 자리가 있는 것일까. 눈물은 눈물샘에서 나온다. 그러나 눈물의 의미까지 눈물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본문에서.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눈물은 눈물샘에서 나온다.

성형외과 의사인 나는 한때 눈꺼풀이 이상하게 움직이는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턱을 움직이면 처져 있던 눈꺼풀이 따라 올라가는 마커스-건 턱윙크(Marcus Gunn jaw-winking phenomenon)였다. 턱과 눈꺼풀의 움직임은 본래 별개의 것이지만, 그 환자의 얼굴에서는 두 움직임이 묘하게 연결돼 있었다. 나는 눈꺼풀올림근단축술(levator resection)로 그 움직임을 줄여주었다. 얼굴에는 이처럼 뜻밖의 연결이 있다.

눈물 분비에는 얼굴신경의 부교감신경 경로(parasympathetic pathway)가 관여한다. 그런데 얼굴신경이 손상된 뒤 재생되는 과정에서 원래 침샘으로 향해야 할 신경섬유가 눈물샘 쪽으로 잘못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음식을 먹으면 침이 나와야 하는데 엉뚱하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이를 ‘악어의 눈물(crocodile tears)’, 또는 미각성 눈물분비(gustatory lacrimation)라고 한다. 신경은 때로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다루는 또 하나의 ‘눈물’이 있다. 눈 밑의 눈물고랑(tear trough)이다. 없애려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아랫눈꺼풀과 볼 사이에 생긴 해부학적 함몰과 그로 인한 그림자다. 지방을 재배치하거나 이식해 고랑을 완화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묘하다. 한쪽에서는 신경이 잘못 연결돼 눈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눈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랑을 없앤다.

눈물의 성분도 분석할 수 있다. 대부분 물이지만 염분과 단백질, 지질을 비롯한 여러 생리활성 물질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성분을 아무리 정밀하게 분석해도 그 눈물이 왜 흘렀는지까지 밝혀낼 수는 없다. 사람은 슬퍼서 울고 기뻐서도 운다. 억울해서 울기도 하고 감격해서도 운다. 혼자 있을 때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면 눈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이다. 요사이 언론을 접하다 보면 오래전에 배웠던 조지훈의 「봉황수」가 떠오른다.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퇴락한 궁궐이다. 그러나 조지훈이 바라본 것은 단순히 낡은 고궁의 풍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가 기울고 옥좌가 거미줄에 덮인 자리에서 시인은 자신이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한다. “패옥 소리도 없었다.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젊은 시절 나는 이 시를 배우며 산새와 비둘기를 단순한 자연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력 주변을 맴돌며 자리를 차지한 간신과 잡배의 모습으로 배웠다. 지금 다시 읽으면 그 해석 하나만으로 시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풍경 소리마저 사라진 추녀 끝과 거미줄 친 옥좌 사이에 둥지를 튼 새들의 모습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에 눈물이 나온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이 구절은 젊었을 때보다 나이가 들어 다시 읽을수록 오래 마음에 남는다. 눈물이 속되다니.

우리는 흔히 눈물을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슬프면 울고, 억울하면 눈물이 난다. 그러나 조지훈에게 눈물은 그렇게 단순한 감정의 분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망국의 현실 앞에서 통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슬픔이 깊을수록 그것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절제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울음을 삼키고, 봉황에게조차 구천에서 호곡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문득 눈물에도 품격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의사라서 눈물을 생각하면 먼저 해부학과 생리학을 떠올린다. 눈물은 눈물샘에서 만들어지고 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신경이 잘못 연결되면 음식을 먹을 때 눈물이 날 수도 있고, 눈 밑에는 ‘눈물고랑’이라는 해부학적 함몰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의학은 눈물이 왜 바로 그 순간 흘렀는지까지 설명하지 못한다.

요사이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본다. 카메라 앞에서도, 많은 시선이 모인 자리에서도, 호소하는 말 사이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판정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의사인 나는 문득 생각한다. 눈물에도 적응증이 있는가. 슬픔에도 때가 있고, 눈물에도 자리가 있는 것일까. 눈물은 눈물샘에서 나온다. 그러나 눈물의 의미까지 눈물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분은 분석할 수 있다. 신경의 경로도 추적할 수 있다. 눈 밑의 고랑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한 방울의 눈물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향해 흘렀는지는 해부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눈물의 마지막 해부생리학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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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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