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영옥 주식농부 “정부, 국민을 시장에 불러들였다면 이제는 오래 투자할 수 있게 해야”

“자본시장으로 국민 끌어들인 정책 방향은 옳아…운영 과정에서 투기적 거래 키워”
“장기투자 가능하려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부터 일치시켜야”
“농부가 농사짓듯 투자해도 성공하는 시장…K-자본시장도 세계 선도할 수 있어”
아시아엔은 지난 8월 6일 ‘이상기가 만난 사람’을 통해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와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를 짚었다. 박 대표는 당시 “돈은 시장으로 갔지만 투자는 사라지고 거래만 남았다”며 단기매매 중심으로 흐르는 증시를 비판했다. 이후에도 논의는 이어졌다. 아시아엔은 8월 6~10일 박 대표와 추가 통화를 통해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과 장기투자 문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물었다. 박 대표는 “정부가 국민의 관심과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인 방향 자체는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ETF와 레버리지 상품 등을 중심으로 투기적 거래가 지나치게 확산된 것은 운영 과정의 시행착오”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정책의 중심을 ‘거래 활성화’에서 ‘장기투자 환경 조성’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오늘 추가로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자본시장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국민의 자금을 시장으로 끌어들인 것은 분명 좋은 방향이었다고 봅니다.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정책 자체는 필요했고 잘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많은 국민이 시장에 들어왔는데 결과적으로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투자보다 사고파는 거래가 크게 늘었습니다. ETF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두 배, 세 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까지 확산되면서 이런 흐름이 더 빨라졌습니다.”
-그러면 정부 정책 자체를 잘못됐다고 보는 것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도 선진 자본시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시행착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본시장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고 국민의 투자문화 역시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상품과 제도가 빠르게 들어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은 건강한 자본시장으로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문제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투기적 거래가 늘었다’는 표현을 썼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뜻입니까?
“주식을 사고파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제는 기업의 가치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기보다 가격의 움직임만 따라 계속 사고파는 머니게임이 시장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자본시장은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성장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매일 사고팔면서 누가 누구의 돈을 가져가느냐는 게임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뒤늦게 들어온 개인투자자들 가운데 피해자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정책의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제는 국민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은 기업을 골라 오래 투자해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법과 제도는 지금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실제 장기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정부만의 몫이 아니라 기업과 투자자 모두의 몫입니다.”
-장기투자 문화가 정착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그 성과가 일부 지배주주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 투자자에게도 그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투자자가 기업을 믿고 오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증시가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던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농부처럼 투자한다’는 박 대표의 투자철학과도 연결되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장기투자 문화라는 것은 결국 농부가 농사를 짓듯 투자해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매일 땅을 파헤쳐보지 않습니다. 좋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고 기업이 성장할 시간을 기다렸을 때 그 성과가 투자자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 시장이라야 국민에게 장기투자를 권할 수 있습니다.”
-한국 자본시장을 세계적인 시장으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가 한국을 많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K컬처를 비롯해 한국의 산업과 기업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K-자본시장도 세계를 이끄는 선진 자본시장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기회입니다.”
-왜 지금 자본시장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봅니까?
“고령화 시대에는 가계와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국가와 공동체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근로소득만으로 노후를 준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국민이 좋은 기업의 주주가 되고, 기업의 성장 성과를 장기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시장이 국민의 삶과 훨씬 가까워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부에 다시 한 가지를 주문한다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국민에게 자본시장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시장으로 들어오게 한 것은 잘했습니다. 이제는 그 다음 단계가 필요합니다. 거래를 더 많이 하도록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좋은 기업에 오래 투자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으로 가야 합니다. 국민을 시세판에 붙잡아두는 시장이 아니라 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인투자자와 기업에는 각각 어떤 책임이 있습니까?
“투자자는 주가만 쫓지 말고 기업을 공부해야 합니다. 기업인은 일반주주를 기업 성장의 동반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좋아져도 기업인과 투자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장기투자 문화는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길을 만들었다면 이제 기업과 투자자가 그 길을 제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박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자본시장’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요.
“농부가 농사짓듯 투자해도 성공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좋은 기업을 찾아 투자하고 오래 기다리면 기업의 성장과 함께 투자자도 성장하는 시장,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일치하는 시장입니다. 그런 자본시장이 만들어져야 고령화 시대의 국민 삶도 안정되고 한국 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